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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지시(耆老之始) : 耆老所(기로소=耆老社)는 太祖(태조)4年(서기1395년) 敬老禮遇(경노예우)를 목적으로 設置(설치)하였는데 正二品以上(정2품이상)의 벼슬을 한 文官(문관)으로서 70歲 以上이라야 入社(입사)할 수 있으며 임금도 年老하면 여기에 참가하여 이름을 적었다. 임금으로는 太祖(태조) 肅宗(숙종) 英祖(영조) 등이 登錄(등록)되었다. 君臣(군신)이 함께 참여하는 곳이기에 官廳序列(관청서열)로는 으뜸이었다. 15世 靖簡公 僖(정간공 희)와 14世 文節公 仲和(문절공 중화)가 제일 첫머리에 登錄(등록)되었다. 그 외 權門出身(권문출신)으로 참가한 분은 다음과 같다. 權仲和(권중화) 權僖(권희) 權軫(권진) 權弘(권홍) 權轍(권철) 權憘(권희) 權大運(권대운) 權大載(권대재) 權說(권열) 權渻(권성) 權忄業(권업) 權是經(권시경) 權示商(권적) 權噵(권도) 權愈(권유) 權相一(권상일) 權裕(권유) 權常愼(권상신) 權(권엄) 權敦仁(권돈인) 權膺善(권응선)
 
문형지시(文衡之始) : 大提學(대제학)의 이름이니 조선조에서 제일 먼저 하신 분이 文忠公 陽村 權近(문충공 양촌 권근)이시다. ※ 大提學은 國家 最高 文學(국가 최고 문학)을 맡아서 外交文書(외교문서)와 科試(과시)等을 統割(통할)하며 學文(학문)에 관계되는 諸般事(제반사)를 管掌(관장)하는 正二品職(정2품직)이다. 本人이 辭任(사임)치 않는 한 終身職(종신직)이며 14世 仲和(중화) 17世 踶(제) 18世 擥(람) 27世 愈(유)가 계시고 麗朝(고려)에는 12世 文淸公(문청공) 13世 菊齋公(국재공)이 계시다.
 
호당지시(湖當之始) : 湖堂(호당)이란 世宗8年(西紀 1426年) 실시되었는데 讀書堂(독서당)의 別稱(별칭)이며 젊고 才操(재조)있는 文臣으로서 임금의 特命(특명)을 받아 工夫(공부)하는 곳인데 大提學(대제학)의 推薦(추천)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湖當에 제일 먼저 一齋 權採(일재 권채)가 大提學(대제학) 卞季良(변계량)의 추천으로 入堂(입당)하였으며 이후 호당에 입당하신 분은 19世 健(건) 景裕(경유) 達手(달수) 22世 雲(운) 26世 重經(중경)이시다.
 
족보지시(族譜之始) : 族譜(족보)라 함은 한 氏族(씨족)의 始祖(시조)를 중심으로 後世(후세)까지 系統(계통)의 사실을 記錄(기록)하여 刊行(간행)한 血統(혈통)의 小史(소사)이다. 우리나라 最初(최초)의 族譜(족보)는 우리 安東權氏(안동권씨)의 成化譜(성화보)이다.

(1) 成化譜(성화보)
朝鮮朝 初期(조선조 초기)인 成宗(성종) 7年 西紀 1476年에 創刊(창간)하였으며 陽村 權近公(양촌 권근)의 子 止齊公 權踶(지제공 권제)가 家譜小牒(가보소첩)을 編修(편수)한데서 비롯하여 踶(제)의 아들 所閑堂 權擥公(소한당 권람 )이 先志(선지)를 받들어 널리 수소문하여 많은 資料(자료)를 蒐集(수집)하였으나 그 亦是(역시) 끝을 맺지 못하였던 것을 그의 內從 徐巨正(내종 서거정)이 尙州判官 朴元昌(상주판관 박원창)과 府使 崔灝元(대구부사 최호원)과 더불어 補完(보완)하여 圖譜2卷(도보2권)을 만들었다. 이것을 더 보완하여 3秩(질)로 編纂(편찬)한 것을 外孫(외손) 慶尙監司 尹濠(경상감사 윤호)에게 부탁하여 安東府(안동부)에서 刊行(간행)한 것이 成化譜(성화보)다.

純誠明亮佐理功臣 崇政大夫 行 議政府左參贊 兼 藝文館 大提學
순성명량좌리공신 숭정대부 행 의정부좌참찬 겸 예문관 대제학
知成均館事 同 知經筵事 達城君 徐巨正 剛中叙
지성성균관사동 지경연사 달성군 서거정 강중서
成化 12年 丙申3月 中興大夫 行 安東 大都護府 敎授 崔鎭 謹跋
성화12년 병신3월 중흥대부 행 안동 대도호부 교수 최진 근발

   
와그너 교수 국내 最初(최초) 조선초기 족보 연구
미 하버드대 동양학과 에드워드 D 와그너 교수는 우리나라 最古(최고)의 族譜(족보)를 찾아내 學界(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安東權氏成化丙申譜(안동권씨성화병신보)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마이크로 필름에서 성화보를 찾아내 이 족보는 이제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文化柳氏(문화유씨) 家靖譜(가정보)(1562)보다 86년 앞선 1476년 간행본이며 3권 126면이라고 밝히면서 이 족보를 보면 朝鮮初期(조선초기) 사회가 동족 관념보다 女性(여성)의 지위, 相續制度(상속제도), 養子(양자)제도 등에서 조선후기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하였다. 특기할 점은

특기할 점은
① 수록 자손의 범위에 親孫(친손)과 外孫(외손)을 同等(동등)하게 다루고 8촌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② 여자의 지위가 남자와 대등하게 출생서열대로 입록했으며
③ 양자제도가 안보여 宗家(종가)관념이 희박한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가면서 남녀 차별이 심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儒敎思想(유교사상)이 컸던 것 같다고 하였다. 또 고려대 崔在錫(최재석)교수는 문화유씨가정보와 성화보를 연구하면서 17세기 이전에는 同族(동족)의 강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外孫奉祀(외손봉사)를 이단시 하거나 先男後女(선남후녀)의 사상, 장남상속, 祭祀(제사)는 長子(장자)에 한정시키는 등은 후기에 同姓不婚(동성불혼)과 族譜(족보)가 조직화되고 있다고 하였다. 와그너 교수는 서울에 체류하면서 과거급제자를 분석하여 사회지도층연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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