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 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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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정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2,521회 작성일 12-12-04 09:31본문
安東權氏 族圖
최영창/문화부 차장 문화일보2012.11.28.
조선시대 역대 왕 27명 가운데 제6대 왕 단종(재위 1452∼1455)처럼 왕위 계승의 정통성이란 측면에서 완벽한 신분을 타고난 임금도 없었다. 1441년(세종 23) 세종의 맏손자(원손·元孫)이자 왕세자(문종)의 맏아들로 태어난 단종은 1448년(세종 30년) 왕세손으로 책봉됐다.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왕세자가 된 단종은 2년 뒤 문종이 재위 2년만에 급서하는 바람에 왕위에 올랐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래 선대 왕의 재위시절 적장자((嫡長子) 또는 적장손(嫡長孫)으로 태어나 왕위에 오른 임금은 단종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완벽한 신분을 타고난 단종은 계유정란(1453)을 일으킨 수양대군(세조)에게 1455년 왕위를 빼았기고 2년 뒤 강원도 영월 유배지에서 죽음을 당했다. 단종 이후에는 각각 성종과 중종의 맏아들(원자·元子)로 태어나 임금이 된 연산군과 인종이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확보한 군주였다. 그런데 연산군은 반정(反正)으로 쫓겨나고 인종은 단명(短命)하는 등 신분상 흠 잡을 데 없었던 왕들의 최후가 좋지 않았던 점이 눈길을 끈다.
비운의 왕 단종의 외가쪽 족도(族圖)가 최근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1999년 공개 구입해 소장해온 유물로, 2011∼2012년 보존처리와 연구를 진행한 결과 단종의 ‘외증외가(外曾外家·외조부의 외조) 족도’로 밝혀졌다. 단종의 혈통을 천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팔고조도(八高祖圖) 가운데 하나로 외가쪽 고조인 권여온(權呂溫)을 기점으로 현손(玄孫)인 단종과 내외후손이 수록돼 있어 ‘안동권씨족도’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비단 바탕에 묵서(墨書)된 두루마리 형태의 족도에 기록된 인물과 관직을 분석한 결과, 제작시기는 1454년에서 1456년 사이로 추정됐다. ‘안동권씨성화보’(1476) 등 조선 초기 족보들과 달리, 첩자(妾子)·첩녀(妾女) 등 적서(嫡庶)를 구분하고 인물들의 관계를 붉은 색 계선으로 표시했으며 두루마리 장황의 형태가 조선 초기 공신교서 등과 유사해 국가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는 게 국립민속박물관 측의 견해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가족을 중심으로 사육신 사건(1456) 연루자들이 대거 기재돼 있고 7건의 동성동본 사례가 확인되는 등 족도는 앞으로 연구가 진행되면 단종과 조선전기 사회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사료가 될 전망이다.
족도가 공개되기까지 국립민속박물관이 기울인 노력도 소장 유물의 보존과 연구의 모범 사례로 주목된다. 1999년 350만 원을 주고 산 ‘가승’은 구입 당시 만지면 바스러질 정도로 열화(劣化)가 진행된 상태였으며 자료 앞부분도 없어지고 상단부는 배접지만 남아 있었다. 구입 후 ‘세계도’로 유물등록이 된 족도는 2006년 국립민속박물관에 서화 보존처리 담당자가 생기고 손상된 부위를 보강하는 열화 비단이 자체 개발되면서 빛을 보게 됐다.
자외선(UV)을 쬐어 만드는 인공 열화견 개발을 완료한 뒤 2011년부터 족도의 본격적인 보존처리와 연구에 착수해 근 2년만인 이번 달에 전시와 학술세미나 개최, 연구성과를 담은 유물보존총서 발간 등을 진행했다.
족도의 명칭에 대한 재검토 및 추가 연구가 전제돼야 하지만, 국립민속박물관 측은 2013년 중 족도의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지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열린 학술세미나 참가자들이 한결같이 지적했듯이, 족도 프로젝트는 학제(學際)간 협력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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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6대 왕 단종(1441∼1457·재위 1452∼1455)의 재위 기간 중 혈통을 밝히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단종의 ‘외증외가(外曾外家·외조부의 외조) 족도(族圖)’가 발견됐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지난 1999년 구입·소장해온 유물인 ‘안동권씨족도(安東權氏族圖)’에 대해, 2011년부터 보존처리와 연구를 진행한 결과 권여온(權呂溫)을 기점으로 현손(玄孫·4대손) 단종을 포함한 내외후손을 수록한 단종의 외증외가 족도로 추정된다고 7일 밝혔다.
외증외가 족도는 조선 초기 왕의 혈통을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팔고조도(八高祖圖) 가운데 하나다. 족도는 족보의 초기 형태로 특별한 체제에 구애받지 않고 대수에 따라 종횡으로 후손들을 도표화한 것이다. 세로 61.3㎝, 가로 219.8㎝인 단종의 외증외가 족도는 비단에 필사한 두루마리 형태로 구입 당시 맨 윗부분이 결실돼 있던 것을 이번 보존처리 과정에서 복원했다.
현재 상태로는 권여온의 사위인 권희봉(權希逢)과 권백종(權伯宗)을 필두로 붉은색 계선으로 이어진 내외후손 336명의 이름만 확인할 수 있다. 족도의 자녀자손 구성을 볼 때, 당초 족도 원본은 단종 재위 기간에 작성한 권여온의 6자녀 자손도로 보여지며 현재 250명의 자녀자손이 확인된다.
특히 권백종의 경우, 붉은색 계선 아래에 아들 권전(權專·1372∼1441)과 권촌(權村), 손녀로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顯德王后), 현손 단종과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의 남편 영양위(寧陽尉) 등이 기재돼 있다.
물론, 단종과 현덕왕후는 직접 이름을 기재한 것은 아니고 부첨(附添) 흔적이 남아 있어 해당 부분에 이름을 표기한 비단 조각을 붙이거나, 아니면 위치만 표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의 경우 ‘영양위’라는 정종(鄭悰)의 부마 봉호만 기재돼 있다.
이와 함께 원본에 사육신 사건(1456)에 연루돼 죽은 단종의 외삼촌인 권자신(權自愼·1418∼1456)의 아들 권하(權瑕)를 기점으로 7대손 금호(琴琥)까지 86명의 자녀자손이 추록돼 있다.
단종의 외증외가 족도도 조선초기 족도 및 족보의 기재와 마찬가지로 자녀는 출생 순서에 따라 각 인물의 관직과 이름만 기록돼 있다.
족도를 분석한 최순권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단종의 외삼촌 권자신의 관직이 승지(承旨)로 기록돼 있고 사육신 사건 이후 떼어낸 부첨의 흔적 등으로 보아 족도 원본은 1454년부터 1456년 사이에 제작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추록된 부분은 권하의 자녀후손들의 생몰연대를 고려할 때 17세기 초반 이후 작성된 것으로 추정했다.
최 연구관은 “‘안동권씨족도’는 현존 최고(最古)의 족보인 ‘안동권씨성화보’(1476)보다 20년 앞서 제작돼 우리나라 족보발달사에서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역사자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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