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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밀공사적 (樞密公事蹟)
추밀공 수평(樞密公 諱守平)
공은 상서공 중시(尙書公 仲時)의 장자로 정3품 광록대부 추밀원부사에 올랐다. 추봉공계의 피화후 쇠퇴의 길에서 추밀공께서 봉록에 올라 권문이 중흥의 터전을 마련케 되었다.
t2031_01.jpg경기도 장단군 진동면 하포리 추밀공 단소
與地勝覽 "수평(守平)은 자품이 풍미하고 성품은 순박하고 후덕하여 질박하고 강직하여 예날 사람의 풍도가 있었다. 고려 고종조에 벼슬이 추밀원 부사에 이르고 송나라 리종순후10년 경술년(서기1250년) 7월별세하였다. 東史立傳 "공은 성품이 풍미하고 순후하여 옛사람의 풍도가 있다. 隊正이라는 벼슬이 되어도 빈한하게 살았는데 낭중인 복장한이 죄없이 귀양가자 수년간 그 전을 경작하였다. 장한이 돌아오자 공은 도조를 운반하여 도조장주를 장한에게 주니 장한이 받지 않고  말하기를 "그대가 경작치 않더라도 어찌 타인이 갈아먹지 안했겠는가, 그대가 그 전토를 돌려주는 것만으로도 족하거늘 어찌 도조를 받겠는가" 하니 공은 문서를 던져주었는데 장한이 받지 않고 들어가니 공은 문서에 돌을 매어 던지고 가 버리니 동리사람들이 말하되 쟁탈의 풍습이된 오늘날 뜻밖의 사람을 보겠다. 하였다. 견룡이라는 벼슬은 직품은 낮으나 열망하는 것이니 자제들이 원하는 바이나 공은 사양하니 사람들이 이는 영화롭게 뽑음이다 하였다. 대체로 아내를 버리고 다시 장가들어 부를 쫒는 이가 많은데 그대가 만일 부잣집에 장가들고 져 한다면 뉘 원치 않겠는가 하니 공은 이르되 빈부는 하늘에 있으니 어찌 차마 수십 년 동안이나 조강지처를 버리겠는 하니 말한 사람들이 부끄러워하고 탄복하더라." 역자 평가 : 여지승람이나, 동사입전에 의하면 추밀공은 품성이 강직하고 소박하며 공사가 분명하고 비록 없이 살아도 비굴하지 낳고 떳떳한 삶을 교훈으로 삼은 듯싶다. 이는 후손들인 권씨들이 대부분 공의 품성을 닮은 듯하니 가훈으로 적어 내려온 은연중 성격으로 변모된 것이 아니겠는가? 한편 당시 관직을 가진 사람도 끼니걱정을 할 정도로 백성들이 피폐하였으니 12세기 후반 무신의 난을 일으킨 이의방 이의민의 피해로 인하여 50여년이 지난 당시까지 백성은 생활고에 시달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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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밀공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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