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권빈첸시오의 파-부친-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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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용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429회 작성일 20-06-09 22:28본문
1) 1592년 12월 성세성사(세례)를 받은 첫 한국인, -조선인 최초로 1784년 음력 1월 중국 북경에서 그라몽(Jean de Grammont, 梁棟材) 신부로부터 천주교 영세를 받았다는 이승훈 베드로보다 192년 앞서 영세함.
2) 한국인 최초의 예수회 수사인 인물
3) 교황에 의해 복자되심
- 기록에 나오지 않은 상태인데, 부친은 어느 ‘파’의 장군이시고, 빈첸시오 복자님의 이름 확인을 대종회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첨부 자료: 영상과 자세한 내용은 pdf 파일 참조--
1. 역사스페셜(KBS역사저널 그날) – 임란포로 빈센트 권은 왜 화형 당했나
- 소년 포로,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자가 되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천주교 신자는 1784년 세례를 받은 이승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보다 200년 가까이 앞선 시기에 천주교 신자가 된 조선인이 있었다.
1617~1632년 사이에 일본에서 순교한 사람들을 작성한 ‘205인 순교복자 명단’엔 ‘빈센트 카운(권)’이라는 이름의 조선인이 있다. 그는 도대체 누구이며,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갔을까?
기록에 의하면 빈센트 권은‘3천 기병을 이끄는 조선 장군의 아들’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잡혔다. 그런데 그를 일본으로 데려간 사람은 스페인 신부 세스페데스로 그는 천주교도였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요청으로 임진왜란 때 비밀리에 조선에 왔다. 조선을 방문한 최초의 서양인이었다.
- 조선인 포로들 사이에 분 천주교 열풍
세스페데스와 함께 일본에 간 빈센트 권은 신학교에 입학해 선교사 수업을 받는다. 당시 일본엔 약 5~10만여 명에 이르는 조선인 포로들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1593년 나가사키에서 3백여 명과 1594년엔 2천 명 이상의 조선인이 세례를 받았다.
관계 사료를 추측해 볼 때 아마도 5천 명에서 1만 명 정도의 조선인 기독교도가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1610년엔 십시일반 비용을 마련해 나가사키에‘성 로렌조’라는 이름의 조선인 성당을 건립한 것이다.
조선포로라는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그들의 이야기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있는 ‘하끼야키 도자기’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빈센트 권은 이들 조선 포로들의 고달픈 삶에 위안이 되었다.
- 조선 포로들은 왜 천주교 신자가 되었나?
조선인 노예 매매라는 충격적 사실을 접한 신부들은 대책회의를 열어 신도 중 노예 매매 하는 자들은 파문에 처할 것이라는 강력한 결의를 한다.
그들은 천주교도인 다이묘들에게 조선인 노예 해방을 호소하면서 한편으론 기금을 모아 조선인 노예들을 되사기도 했다.
정신적인 구원을 뛰어넘은 실천적 행동에 큰 감명을 받은 조선 포로들은 앞 다퉈 천주교 신자가 됐다. 그리고 예수회는 일본에서의 포교활동을 조선에서까지 이어가려한다.
교리와 기도서를 한글로 번역하며 포교와 자선을 통해 조선인 천주교도들의 중심에 있던 빈센트 권에게 그 임무가 맡겨졌다. 그는 예수회로부터 조선 전도의 특명을 받고 북경으로 파견된다.
- 그의 마지막 선택, 순교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12년 기리시탄(크리스찬) 금지령을 발표한 이후 지속적으로 천주교를 탄압했다.
그리고 배교하지 않는 천주교도들에게 잔혹한 박해를 가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 일본에서 자선과 포교에 매진하고 있던 빈센트 권 역시 시마바라에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지만 굴복하지 않는다.
빈센트 권은 감옥에서 마침내 수사로 임명된다.
그러나 니시사카 언덕에서 끝내 화형을 당한다.
46세의 나이, 그가 조국을 떠난 지 33년 만의 일이었다.
신역사스페셜 100회 - 임란포로 빈센트 권은 왜 화형 당했나 (2012.3.8. 방송)
2. 조선인 기리시탄(일본어: キリシタン, 포르투갈어: cristão 영어: Christian) 순교자
복자(福者) 고스마 다케야(コスマ竹屋)
복자 안토니오(Antonio)
복자 가이오(Caio) : 복자 가이오는 나병 환자들을 돌보는 평신도 사목을 하였으며, 화형으로 순교했다.
복자 권(權) 빈첸시오(Vincentio) : 권 빈첸시오는 예수회 수사였다.
복자 가이오 지우에몬(カイオ次右衛門)
복자 가스파르 바스(Caspar Vaz)
이외에도 더 있다.
조선인 기리시탄 중에서 조명받는 인물
줄리아 오타아 : 고니시 유키나가의 양녀였으나,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녀로, 다시 유배되어 여생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A%B8%B0%EB%A6%AC%EC%8B%9C%ED%83%84
3. 가쿠레키리시탄(일본어: 隠れキリシタン; 영어 Hiding Christian)
17세기 초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밀교 형식으로 신앙을 유지해온 일본의 로마 가톨릭 신자들을 말한다. 1612년에 에도 막부가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불법화하면서 많은 수의 가톨릭 신자들이 음지로 숨어들어서 신앙을 유지했고, 그 과정에서 원래의 가톨릭의 교리와는 많은 부분이 달라져 전해지게 되었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A%B0%80%EC%BF%A0%EB%A0%88%ED%82%A4%EB%A6%AC%EC%8B%9C%ED%83%84
4. 복자 권빈첸시오(1581~1626). *부친은 어느 파의 장군이시고, 빈첸시오 복자님은 이름 확인 필요
일본에서 순교한 한국인 복자. 조선 “권율?“ 장군의 아들로 임진왜란 중 13세 때 고니시 유끼나가(小西行長)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가 쓰시마(對馬島 도주(島主)의 부인인 마리아에게 맡겨져, 1592년 12월 성세성사(세례)를 받고,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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