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계하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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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태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9,999회 작성일 12-11-12 07:29본문
계하사목(啓下事目)
계하(啓下) 사목(事目)의 계하라는 것은 임금이 제가(制可)하는 것을 말하고 제가는 결제(決濟)하는 것으로 충훈부(忠勳府)에 등록이 된 공신자손(功臣子孫)이 어떠한 이유(理由)로 지방관아(地方官衙)로부터 천민(賤民)의 대우를 받았을 때에 충훈부를 통하여 그들을 예우하라는 긴급 지시를 하는 것을 계하 사목이라 한다
(啓下:왕(王)이 제가한 가르침)한 교문(敎文)에 본부(本府)에서 가르친 조항(條項)은 개국 이래로 영조(英祖)때의 양무22공신(揚武二十二功臣:李麟佐亂의 平亂功臣)에 이르기까지 공신(功臣)의 자손 등은 매양 마땅히 연례(年例)에 따라 단자(單子)를 받아 수정(修正)을하고 세계(世系)가 있으면 종부시(宗簿寺)[조선시대 왕실의 계보인 선원보첩(璿源譜牒)을 편집 기록하고 종실(宗室)의 잘못을 조사 규탄하는 임무를 맡아보던 관청]와 같이 선원록[璿源錄:왕통의 보첩(譜牒)]에 수정할 세계가 없으면 돈녕부(敦寧府)가 보첩을 수정하는데 대수(代數)의 원근(遠近)을 말하지 말고 왕파나 공신들의 자손에 일체 단자를 수정하는 것은 비록 천백 대 (千百代)가 되더라도 라도 폐(廢)하거나 빠트리지 말고 산하(山河)가 대여[帶礪:띠는 황하(黃河)는 띠와 같이 적어지고 여(礪)는 태산(泰山)은 숫돌같이 적어진다는 것 장구한 세월임] 같아도 자손들은 향유(享有)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국조(國朝)와 시종(始終)을 같이하자는 뜻을 서문(誓文)을 만들어 하늘과 땅 에 제사하고 린각(麟閣)에 안전하게 갈무리하는 것은 역대조(歷代朝)의 법이 금석(金石)과 같거늘 왜읍(外邑)의 아전의 무리들이 법의 중함을 알지 못하고 공신자손(功臣子孫)이 자그마한 혐단(嫌端)이라도 있으면 이를 탈을 잡아 관가(官家)를 속여서 수단(修單)을 하지 아니하고 본부에 논보(論報)해서 그 선대(先代)의 음혜(蔭惠)를 끊고 천역(賤役)을 하게 하는 것은 더욱 이 법의 본의(本意)가 아니니 이 뒤에 만약 전(前)의 폐가 있을 것 같으면 해당 수령(首令)은 파직하고 오리(汚吏)는 형(刑)을 추정(推定)하여서 징계할 것이다.
1. 충의위(忠義衛)에 구전(口傳)하는 사람이 있기 전에 역(身役)을 정하여 그에 해당하는 대우를 하고 연호잡역(煙戶雜役)에 침노치 못하게 할 것이며 전후의 사목(事目)을 신칙(申飭)하고 극히 엄중히 하였거늘 외읍(外邑)의 무리들이 조정(朝廷)의 우휼(優恤)한 뜻을 알지 못하고 곧 거행하지 아니하니 사체(事體)가 극히 미안하게 되어 임술년(壬戌年)겨울에 안(案)을 정할 때 주상(主上)으로부터 공신자손을 우휼(優恤)하여 특히 종후(從厚)하라는 교지(敎旨)를 내리시고 조목(條目)을 들어 신칙(申飭)하셨으며 정묘(丁卯)년에 본부(本府)에 거동하시어 교지를 내리실 때도 대신들의 진달 에 의하여 공신자손은 법전(法典)에따라 물침군역(勿侵軍役)토록 하고 영(令)을 따르지 않는 태만한 수령(守令)은 탑전(榻前)에서 장문정죄(掌問定罪) 할 것이라 하교(下敎)하여 가르치심이 이와 같거늘 하교와 신칙 하심을 다른 사목(事目)과 더욱 중하게 할 것이다
차후에 지방관아(外邑)에서 다시 전과 같은 습성(習性)을 거듭하면 도신(道臣)과 수신(帥臣)[관찰사와 병마절도사]는 사목에 의거 그중 가장중벌로 징계하고 수령은 판하(判下)의 사의(辭意)에 의거하여 그 죄를 물을 것이며 아전(色吏)은 형을 추정하여 귀양을 보낼 것이다
1.지방(外邑)의 공신자손의 세계단자를 그 지방관이 이름을 적고 도장을 찍어(着名踏印) 삼향소(三鄕所)에 상송(上送)하는 것은 법의 뜻이 (法意)가 우연한 것이 아니거늘 근래에 본읍(本邑)에서 수단(收單)해서 상송(上送)하는 것을 보면 그가 공신 자손인줄 알면서도 감색배(監色輩)의 무리들이 조정의 영을 따르지 않고 군역에 침책(侵責)게하며 심지어 나라(朝家)의 덕의(德意)를 깨닫지 못하게 할뿐 아니라 전관이 임이 탈역(頉役)한 자를 다시 다른 역사(役事)에 충정 함으로 잔 약한(殘疲)공신자손이 안도를 하지 못하니 경상(景像)이 가긍(可矜)한지라 본부의 사목에 매거(枚擧)하야 해당고을의 수령(守令)이 거행하는데 뜻이 없으면 차후에 특별한 엄칙(嚴飭)을 가할 것이며 그 지방관이 수단 상송자(收單上送者)를 신역(身役)에 혼침(混侵)하면 해당지방관은 사목에 의하여 파직하고 본부의 관행에 따라 본도(本道)의 병마절도사(師臣)도 역시 檢飭을 못한 책임을 면하지 어려울 것임으로 그 책임의 중요함에 쫓아 추고하고 해당 고을의 좌수(座首)와 색리(色吏)도 각각 중하게 다스리는 실마리로 할 것이다 1804년정월19일(嘉慶九年) 동부승지(同副承旨)臣 박종순(朴鍾淳) 차지(次知)
성상이 판단하여 윤허한 사항을 경외(京外)에 반포하며 이번에 이와 같음이 경상도 영천에 거주하는 정응권등(鄭應權等)은 즉(卽)
선조조 선무원종공신 정천리(宣祖朝 宣武原從功臣 鄭千里) 의 자손인지라 그의 선조의 높은 공적이 소연하게 인각(麟閣)에 실려있고 그 자손 대대로 수록한 것을 너그럽게 영세(永世)에 빛이도록 한 교지가 반반히 단서철권(丹書鐵券)에 나타나 있거늘 기혹(其或) 외읍(外邑)이 법의(法意)를 두지 아니하고 각양의 군관(軍官)이나 교원생(校院生), 기패관(旗牌官), 검독면임(檢督面任)이나 연호잡역(煙戶雜役)의 폐단을 낳게 함으로 이에 계하절목(啓下節目)을 소치(所置)케 하니 이로서 지방관에 빙고(憑考)하고 본관에 단치(段置)해서 이를 살피고 받으러 시행함이 마땅함이니라
右下 공신자손 鄭應權 鄭福起 鄭命孫 鄭達孫 鄭 喜 鄭永壽
嘉慶十年十月 日(1805년10월 일)
忠勳府 手決
이 계하사목은 鄭千里 將軍의 13세손 鄭仁煥이 보존 하다가 2004年10月에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기증하였다
규장각 奇贈 古圖書. 古文書 目錄集 99페이지에 충勳府 謄給 청구기호 奎古306호에 기증자 鄭仁 煥으로 되어있다
계하사목충훈부에서 배껴서 발급함본부에 하교한 내용중에 개국공신으로부터~ 장무공신(영조때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록훈된 공신)에 이르기 까지 22공신들의 자손들을 정해진 해(자,오,묘,?)에 의례히 명단을 적어 올려 세계를 기록하여 종부시에서는 선원록을 수정하고 돈녕부에서는 족보를 수정하는데 댓수의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았다. 왕족중에서 공신에 책록된 후손들도 명단을 받아 댓수를 수정하여 비록 천백대가 지나도 누락되지 않게 하여 산과 물이 없어 질때까지 그 후선들은 나라와 함께 길이을 누리게 할 것을 맹서하는 글을 지어 천지에 고하고 기린각에 보관하였다.옛 왕들이 만드러 놓은 법이 금석과 같은데 지방 고을의 아전들이 법례의 중함을 알지 못하고 공신의 자손들 중에서 그 것을 탈(이유)로 하여 거짓 본관에게 고하고 명단을 충훈부에 제출하는 것을 옳치 않다하여 선음(공신의음덕)을 끊어 버리고 천역으로 몰아 노는 것은 비록 법이 정한 본 뜻은 아니다. 차후에 만약 전날과 같은 폐단이 있으면 해당 수령은 파직하고 향소의 색사는 추징할 것임- 지방에 살고 있는 공신자손 들의 세계와 명단을 지방관의 이름을 써서 날인하고 삼향소 올리는 것은 법의 본뜻에 우연한 것이 아닌데 요주음 본읍에서 명단을 보냄에 있어서는 공신의 자손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감색 무리들이 조정의 명령을 어기어 군역을 마치고 심지어는 일찍이 조정의 덕의를 입었는데도 또 전관이 잡역을 면제해 주었는데도 다시 다른 일을 맡겨 공신들이 후예를 괴롭히어 편안치 못하게 하니 그 경상이 불쌍하다 - 중간 생략 -도광26년(1846년) 정월 1일 우부승지 조구하 담당장계(왕명으로 지방에 나간 관원이 글로 보고)에 따라 허락한 일을 판결한 뒤에 서울과 외방에 널리 알림지금 전라도 제주에 사는 충의위 소속인 이계주등은 곧 인조때의 정사공신 이득춘의 자손이다. 그 선조가 공로가 드러난 것은 기린각에 밝혀져 있다 그러므로 그 자손은 대대로 명단을 기록하여 은혜가 영원토록 (국가의)도움이 미쳐야 된다는 명령이 단서철권에 반반하게 드러나 있다. 그런데 외읍에서는 법령의 뜻을 모르고 군관, 교생, 원생, 기패관 군보의 천역과 연호의 잡역을 마낀 폐단이 있다. 그러므로 장계에 따라 일을 처리 하라는 사목을 이와 같이 배껴주어 이것을 지방관이 살피게 한다. 본관(해당지방관)은 단치 이것을 보고 알아서 마땅히 시행할것.충의위 이계주외 65명도광 28년(헌종14, 1848년) 5월 일 등사하여 줌 충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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