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금나라 황실의 태사공 후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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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태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41,125회 작성일 12-11-16 23:11본문
金皇室의 太師公 後裔說
2009.09.05에 뱡영된 kbs 역사스페샬의 解說全文
금태조 아골타
중원에서 최초로 한족을 밀어낸 금태조 아골타, 그의 시조는 놀랍게도 신라인 함보였다. 이것은 전설이나 야사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금나라의 정사인 <금사>와 금 건국 시 송나라에서 씌어진 <송막기문>에 명확히 나오고 있다.
“금시조의 이름은 함보인데 처음에 고려에서 온 신분이다” (금사본기 제 1권, 세기)“여진의 추장은 신라인이고 완안씨는 중국말 왕과 같다”(송막기문)
금사와 송막기문
고려에서 온 신분이며 신라인인 금시조. 아골타의 출생년도를 고려해 계산해보면 금 시조 함보가 여진에 들어온 시기는 신라 말, 고려 초다. 당시 신라와 고려의 왕조교체기였던 한반도의 사정을 생각하면 두 사서는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아골타의 조상 함보, 그는 과연 누구일까?
함보, 그는 누구인가?
<동명해사록>에 함보의 9대손<실은 7代孫> 아골타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김부(경순왕敬順王)가 비록 항복하여 고려왕이 합병하였으나 김부의 외손 완안아골타는 곧 권행의 후예로서 능히 중국을 갈라 다스려 백년동안 대를 이었으니... (동명해사록 1636년)
조선의 유학자 김세렴은 여진족의 아골타를 경순왕의 외손이며 조선 최고가문 권행의 후예라고 하고 있다.그런데 권행의 본래 성은 金(김)씨였다.김행의 아들이며 경순왕의 외손인 금의 시조.당시 족내혼을 했던 신라 왕실의 관습을 고려하면 그의 성이 金(덧말:김)이며 신라의 후예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동명해사록>의 금 시조와 <금사>의 함보는 과연 동일인인가? <?xml:namespace prefix = u1 />
신라 후예인 왕족과 발해 후손의 왕비족이 세운 나라 금
함보를 시조로 둔 금 황실은 발해인<遺族>을 왕비로 맞는다. 금나라의 성군 세종의 어머니, 4대 황제 해릉왕의 어머니는 모두 발해 여인이었다. 또한 아골타는 발해인을 신뢰하여 발해유민 장호를 새로운 수도 북경 건설 책임자로 등용한다. 발해는 대제국을 경영해본 경험이 있었다. 금나라는 이런 발해의 경험을 이용하여 국가체제를 확장해 나갔던 것이다.<(698∼926년>
청 황실의 성씨도 김씨였다.
청태조 누루하치
금 멸망후 (372년후인) 1616년, 여진은 다시 후금을 세웠다. 바로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이다.그런데 청나라 황제 성은 아이신 줘러 였다. 아이신愛新)이란 금(金), 줘러覺羅)란 겨레(族)부족 씨 등을 뜻한다. 결국 금 부족, 김씨들이라는 뜻이다.
신라 왕족인 경주 김씨, 그의 후예인 금 황실, 청 황실까지 그들은 모두 금을 뜻하는 김(金)씨들이었던 것이다.
만주역사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금나라, 청나라로 이어지는 만주의 역사는 우리 민족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한족의 영토,중원을 만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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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광님의 댓글
권오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고려 태조 왕건이 권행시조님를 아부라고 불렀다는 것은 엄청난 역사입니다..아부란 중국 한나라의 시조 유방이 자신의 책사 장량을 아부라고 했고, 주나라 시조가 강태공을 아부라고 불렀습니다..아부란 뜻은 개국왕의 첫본째 책사(참모)라는 뜻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