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복야공파 상암공계
작성일 12-11-1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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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권씨는 930년 득성이후 안동지방의 향직(鄕職)에 머물다가 1200년대 10世에 이르러 경직(京職)으로 진출하여 13世 문탄공(휘 漢功 호 一齋)은 고려 충선왕때에 도첨의우정승(최고위직)을 지내셨고 문탄공의 작은 아들 문절공(휘 仲和)은 조선 태종때에 영의정까지 오르셨다. 우리는 문탄공의 큰 아들 자손으로 16世 감정공(휘 執德)께서 왕조 교체기에 합천군 대병면으로 은둔하여 경남의 입향조(入鄕祖)가 되셨다. 18世 사용공(휘 繼佑)께서 산청군 단계로 이주하셨으나 20世에 이르러 장계 삼괴당(휘 時敏)자손은 대병으로 복귀하고 참봉공(휘 時準)은 단계를 지켰으며 사직공(휘 時得)자손은 산청군 단성 입석에 자리잡았다. 단계에서 23世에 四寸간에 문과급제가 3분이 났으니 동계공(휘 濤 시호 忠康公) 묵옹공(휘 潗) 상암공(휘 濬)이다. 상암공은 묵옹공의 동생이며 장계(長系) 우천공(휘 克有)는 단성면 강루에 정착하고 차계(次系) 덕암공(휘 克履)가 의렬 신반에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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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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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위의 글을 보면 상암공은 權권 濬준 선생님이신지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 보면 아래처럼 되어있는데 동일 인물인지요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도보(導甫), 호는 상암(霜?). 시준(時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운(運)이고, 아버지는 판관 세인(世仁)이며, 어머니는 이공헌(李公憲)의 딸이다.
[내용]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합격하고,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전적(典籍)이 되었다. 그때 정치가 문란하여 황덕부(黃德符)ㆍ이위경(李偉卿) 등이 작당하여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1623년 학정(學正)으로서 인목대비를 서궁(西宮)에 유폐한 뒤의 어지러운 정치상황을 수습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 뒤 삼척ㆍ광주ㆍ파주 등지의 수령을 역임하였는데 잘 다스려 치적이 뛰어나 안팎에서 표창하였다. 심지어 어떤 고을에서는 동(銅)에다 업적을 새겨 덕을 칭송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읽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였다.
권태현님의 댓글


작성일
同一人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