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 순례 13] 忠貞의 곧은 節義 桐溪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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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800회 작성일 12-04-30 13:51본문
[유적지 순례 13] 忠貞의 곧은 節義 桐溪公 |
忠貞의 곧은 節義 桐溪公 동계공 휘 달수(達手)는 검교공파(檢校公派) 종손인 공주목사 유순(有順) 의 손자며 군위현감 임의 세째 아들이다. 호는 동계(桐溪)이며 1469년 출생하여 성종20년 21세로 사마시 생원, 진사에 급제하고 24세에 식년시문과(式年試文科)에 급제하였다. 공은 예문관 검열을 지내고 연산군 1년 사가독서를 얻어 호당(湖堂)에 들어갔다. 그후 사간원 정헌, 정랑을 지냈고 명나라로 가는 사신 서장관(書狀官)으로서 북경에 다녀온 후 홍문관 교리가 되었다 |
연산군(燕山君)10년 생모인 폐비 윤씨를 추증하여 제헌왕후로 봉하려 할 때 공은 이를 반대하여 이행(李荇)과 함께 극언으로 상소하다가 같이 하옥되어 국문 끝에 용궁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연산은 생모가 사약을 받고 죽은(賜死)사실을 알게 되어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키니 공이 불려 올라와 국문 끝에 참사(斬死)되니 공의 나이 36세였다. 공이 졸한지 2년 후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나니 연산은 폐출되고 공은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로 추증되었다. 아울러 예조에서 제사를 지내주고 자손에게 녹을 내렸다. 義節雙城의 權達手 夫婦 |
임호서원 경내 |
상주문화원은 공의 전기를 싫었으니 요지는 아래와 같다. [권달수는 고려태사 행(幸)의 후예이며 젊어서 학문이 뛰어났으며 당대의 유명한 선비들과 벗하였다. 1492년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1495년 독서당에 들어갔다. 연산군의 생모 윤씨가 사약을 받았는데 연산은 임사홍의 밀고로 사인을 알게 되자 성종의 두 후궁을 박살하고 그 소생인 왕자를 죽이는가 하면 조모인 인수대비(仁粹大妃)를 폭행하여 죽게 하였다. 그리고 윤씨를 성종묘(成宗廟)에 배사(配祀)케 하려하였다. 신하 중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공은 “내 목숨을 아껴 선왕인 성종의 영혼을 배반하겠는가!” 하고 임금께 바른 말을 올렸다. 연산은 공을 곤장을 쳐서 용궁으로 귀양 보냈다. 그후 연산은 윤씨를 추숭(追崇)할 것을 논의케 하였는데 공은 적극 반대에 나섰다. 공은 잡혀와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 국문을 받을 때 공은 발뺌하는 사람의 죄를 모두 자기가 했노라 뒤집어쓰고 동료를 배신하는 일이 없었다. 정종로(鄭宗魯)는 행장(行狀)에서 “공의 하늘에 닫은 충절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있지만 생명보다 의리를 더 무겁게 여겨 마땅히 죽을 자리에 죽으니 그 절개는 칼날과 견줄만하다.” 고 하였고,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은 공의 묘제문(墓祭文)에서 “곧은 기개와 절의는 하늘에 치솟아 해를 관통하리만큼 절개가 곧고 충성스러웠도다.(擎天直氣 貫日貞忠)” 라 하였다. 남곤(南袞)은 비문(碑文)에서 “지아비는 곧은 말을 하여 죽고 지어미는 절개로 죽으니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의 길이 해와 같이 밝고 달과 같이 밝도다.” 라 하였다.] 節義 4人 臨湖書院에 配享 |
배위 증숙부인(贈淑夫人)은 동래정씨 감찰 계금(繼金)의 여식으로서 상주 함창에 있다가 공의 참사소식을 듣고서 식음을 전폐하고 상청을 차려 하루 세 차례 상식을 올리며 60여일을 기다려 공의 시신이 도착하자 순절(殉節)하니 부군과 함께 장사지내었다. 1507년 경상감사 장순손이 이 사실을 조정에 계문(啓聞)하였더니 중종은 숙부인을 증직하고 정려(旌閭)를 명하였다. 정려는 현재 상주군 이안면 중촌리에 있다. 공의 손자 경호(景虎)는 임란(壬亂)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현손 이렬(以說)은 병자호란(丙子胡亂)때 의병을 일으켰으니 대대로 충성을 다한 집안이었다. 공의 사적은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등에 나와 있으며 유고로 동계집(桐溪集)을 남겼다. 숙부인의 사적은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 오르고 1693년 사림(士林)의 발의로 임호서원(臨湖書院)에 봉향(奉享)되었다. 임호서원(臨湖書院)은 함창읍 신흥리 오봉산자락 저곡천에 있다. 서원에 봉향된 분들은 공(公) 이외 4분이며 모두 연산의 학정에 절사되거나 중종반정시 절의을 드높인 명신들이다. 남계(藍溪) 表沿沫은 문장가로 서거정의 필원잡기에 서를 하였고, 허백정(虛白亭) 洪貴達은 문장가로 황화집에 올랐으며, 뢰재(瀨齋) 蔡壽는 한글소설의 효시 설공찬전을 저술한 분으로 동문선에 등재되어 회자되고 있다. 휴암(休巖) 蔡無逸은 명관으로 선정을 베풀었다. <현봉 권경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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