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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순례 63-2 葆眞堂 諱 士鈞의 諸子孫 (종보 제434호20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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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178회 작성일 12-04-3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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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순례 63-2 葆眞堂 諱 士鈞의 諸子孫
죽봉공(竹峰公) 수경(守經)은 신(愼)의 독자로서 명종15년에 출생하여 선조 34년에 사마시(司馬試) 진사가 되고 선조 36년 희릉참봉 광해군 5년 군기시 주부(主簿)가 되었다. 광해가 영창대군을 죽인 사건이 일자 벼슬을 버리고 강릉의 퇴곡에 은거하면서 정경세(鄭經世)가 찾아오면 해지는 것도 잊고 담화하였다. 인조 1년에 64세로 졸하니 경포호 남쪽 모안리 환선정(喚仙亭) 위에 장사하고 묘지는 지제교 김진(金振)이 짓고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이 비문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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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 죽봉공 수경 묘소(강릉시 포남동 모안리 경포호 남쪽)

24세 퇴곡공(退谷公) 칭(稱)은 선조13년 출생하여 인조 5년 식년시 생원3등으로 합격하였으며 인조 7년 별시 문과 병과에 급제하였다. 공은 인조 8년 전적(典籍), 공조좌랑, 이조가좌랑, 경상도 도사에 부임하고 인조 13년 형조정랑, 인조 20년 통훈대부 성균관 직강 사예(司藝)를 지냈다. 강석기, 김육, 유주 한회 등과 동경계를 조직하고 보진당에 오가(五架)를 설하여 독서케 하고 율곡서원(栗谷書院)의 위판을 썼다. 인조 21년 64세로 졸하니 종부시정 겸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으로 추증되었다. 묘소는 강릉 경포호 환선정 선고묘 계하에 합부이고 좌윤 유항(柳恒)이 행장을 짓고 외손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이 비문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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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세 퇴곡공 칭묘소(모안리 선고 묘 계하)

환선정(喚仙亭)기에는 경포호 남쪽기슭에 권협(恊)이 지은 정자로 부사 정경세가 시로 읊기를 “그림같은 환선정이 구름 밖에 솟았으니 봉래산 신선들을 불러도 되겠구나. 밤늦도록 술 마시고 촛불을 물리니 휘어청 밝은 달이 호수에 넘실대네!”라 하였으며 판서 김세렴도 와서 시를 지었다. 죽봉공과 퇴곡공의 정화사업비문에 “경포호 남안에 정자가 있으니 학동공이 창건하고 여기에 죽봉공과 퇴곡공 묘소를 340년이 흘러 정화하니 휘는 수경이요 조정에서도 덕행을 인정하였으며 노후에는 명사들과 환선정에서 시를 읊으며 소요하였는데 몸가짐이 단아(端雅)하니 사림으로부터 추앙받았다. 퇴곡공 휘 칭은 문과급제하고 정원에 오가(五架)를 만들어 자식들을 면학 정진시키니 5자 모두 성공하여 영예로운 가문을 전승하였다.”
아들은 흥문(興門), 흥진(興震), 흥익(興益), 흥태(興泰) 네 분을 두었다.

25世 흥문(興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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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흥문 묘소(강릉시 안국산 아래 22세 동지공 묘소 계하)

어려서부터 다재다능하고 문장과 서화가 빼어나 13세에 서법을 열심히 배워 현판액자를 잘 썼으며 서법이 독특하여 사람들이 모두 칭송하였으나 18세에 요절하였다. 흥진(興震)은 인조 8년 진사가 되었다.
묘소는 강릉시 안국산 아래 22세 동지공 휘 신 묘 계하에 있다.

사물제공(四勿齊公) 흥익(興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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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사물재공 흥익 묘소(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장천동)

선조41년 출생하여 인조11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인조17년 별시 급제하여 전적(典籍), 공 예 호(工禮戶) 삼조 좌랑(佐郞) 겸 춘추관 기주관을 하였으며 효종2년 보령현감, 청주판관을 지냈다. 임기를 마치고 떠나올 때 청주사람들이 공의 청렴함을 사모하였고 벽면에 써 놓은 글을 병풍으로 꾸며 보배로 소장하였다고 청주읍지에 기록이 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거가효우하고 위관청근이라(居家孝友 爲官淸勤)’글은 공의 덕행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공은 어려서부터 총명예지하고 음송(吟誦)하기를 즐겨 따라 외우는 자 있으니 사람들이 정강성(鄭康成)의 가문에 비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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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재공 묘역 정화기념비

서경(書經)역경(易經)에 심취하였고 당시 명류인 조경(趙絅)과 채유후(蔡裕後) 등이 공을 훌륭히 일컬었다. 효종6년 작고하니 향년 48세였다. 묘소는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장천동에 합부하였고 외현손 번암 채제공(蔡濟恭)이 묘비를 지었다. 3남 1녀를 두었으니 시일(時一), 재일(載一), 균일(均一)이다.

흥태(興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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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흥태 묘소(강릉시 안국동 백씨묘 좌측)

인조 원년 출생하여 인조 20년 진사가 되었으며 문장이 뛰어나 좌윤 유항(柳恒)이 공의 인품이 준걸함을 보고 사위로 삼았다. 1646년 작고하니 향년 24세 약관이었다. 배위 전주유씨는 사별 후 60여 년 동안 몸치장을 하지 않고 어육을 먹지 안했다. 나라에서 정려(旌閭)를 내리고 묘소는 강릉 안국동 백씨묘 좌록에 합폄이다.

28세 세규(世規)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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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세 세규 묘소(강릉시 성산면 안국동 동록)

흥문(興門)의 증손이며 선고는 만건(萬建)이다. 숙종 42년 출생하여 검소하고 성인처럼 행동하였다. 호는 국은(菊隱)이며 학문을 열심히 연마하여 영조38년 명경(明經) 병과에 합격하여 괴원으로 부임하고 승문원 정자를 거쳐 영조49년 통훈대부 전적을 역임하고 예조좌랑, 강원, 전라 도사(都事)를 지냈다. 정조14년 통정대부 형조참의를 끝으로 별세하니 향년 75세였다. 묘소는 강릉시 성산면 안국동 동록에 합폄하였다.

28세 세구(世矩)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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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 세장동(강릉시 안국동)

경종 원년 출생하여 재예가 뛰어나 송대 곽충서가 지은 자학서인 패류를 익혀 이름을 날렸으며 문장과 필력이 뛰어났다. 영조 29년 명경과(明經科)에 합격하고 전시에서 갑과에 합격하여 성균관 전적(典籍)이 되었다. 시험에서 주역을 강하여 서전(書傳)이하부터는 암송하니 시관이 찬탄하였다. 과거보러 가다 도중 마상에서 시를 읊으니 “황혼에 말을 몰아 운교역에 도착하니 휘영청 밝은 달빛 낮과 같은 걸 여기서 서울은 몇 만리더냐 천제와 선녀별이 나를 불러 손짓하네” 사람들이 이르기를 석갈(釋褐)처음으로 벼슬할 기상이 있다고 임영지에 기록이 있다. 영조 44년 작고하니 향년 48세였고 문집을 남겼다. 묘소는 강릉시 포남동 모안리에 삼합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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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세 세구 묘소(강릉시 포남동 모안리)

핍(愊)은 참판공 개(槩)의 제 3자로 생졸은 미상이며 묘소는 안국산 선영에 있다. 공의 아들은 이경(以經)이고 이경은 네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 욱(稶)은 선조 29년 출생하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2자 색(穡)도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3자 직(稷)도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4자 육(稑)은 효성이 극진하여 부친이 병환으로 기질이 되자 단지수혈로 소생시키니 임영지에 사적이 실려 있고 숙종조에 정려(旌閭)가 내렸다.
<감수 대사성공종회 옥송 우석, 글 사진 현봉 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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