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 순례55] 僕射公派 判書公系 中郎公 諱 厚와 그 後孫 (종보 제421호 20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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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5,324회 작성일 12-04-30 15:43본문
[유적지 순례55] 僕射公派 判書公系 中郎公 諱 厚와 그 後孫 |
안동지역에는 복야공파(僕射公派)의 판서공(判書公) 휘(諱) 인(靷) 계열(系列)과 관련된 여러 개의 재사가 유지(維持) 전승(傳承)되고 있어서 공의 유덕(遺德)과 그 후손들이 번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판서공의 독자는 중낭공(中郎公) 휘(諱) 후(厚)이고, 손자(孫子)는 횡성공(橫城公) 휘(諱) 계경(啓經)과 휘(諱) 자경(自經), 휘(諱) 민경(珉經) 세분이다. 먼저 판서공(判書公)의 송파재사에서 남서쪽으로 풍산읍 막곡리(청석골)에 증종손인 사정공(司正公) 휘(諱) 개(玠)의 청석재사(靑石齋舍)가 있다. 그 건너편에 위치한 대표산의 남쪽 기슭에는 판서공의 현손(玄孫)이자 사정공(玠)의 장자인 사맹공(司猛公) 휘(諱) 숙형(叔衡)의 대표재사(大瓢齋舍)가 있다. 대표재사에서 서북쪽으로 5㎞쯤 떨어진 곳인 풍산읍 노리(모로골)에는 사맹공(叔衡)의 현손인 유(紐)를 비롯하여 아래로 4위(思道, 渷, 承緖, 秀安)의 묘제를 위한 노동재사(魯洞齋舍)가 있고, 또 사맹공의 8세손인 휘(諱) 수안(秀安)의 장자 휘(諱) 운창(運昌)의 정자 모로당(慕魯堂)과 차자 휘(諱) 운승(運升)의 정자 경모재(敬慕齋)가 노동재사(魯洞齋舍)와 인접한 곳에 있다. 청석재사(靑石齋舍) |
靑石齋舍 :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에 있으며 사정공(司正公) 휘(諱) 개(玠)의 묘제를 위한 재사(齋舍) 청석재사(靑石齋舍)는 사정공(司正公) 휘(諱) 개(玠)의 묘제를 위한 재사(齋舍)로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의 청석골(靑石谷)에 있다. 막곡리(幕谷里)는 두곡(杜谷) 혹은 두곡촌이라고 하며, 청석골은 서쪽으로 풍산읍 수곡 1리와 접해있고 북쪽으로 서후면 교리의 주산인 대표산(大瓢山)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지명유래에 의하면 마을 앞에 청석(靑石)이 있다고 해서 청석골이라 하였으며, 옛날 이곳에 천석꾼이 살았다고 해서 천석골(千石谷)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후손(後孫) 휘(諱) 오봉(五鳳)이 경자(1960)년에 지은 청석재사(靑石齋舍)의 상량문(上樑文)을 살펴보면 사정공의 묘소 아래에 재사가 없어서 묘제를 인근에 있는 송재(松齋)에서 준비하여오다가 그 후 초옥(草屋)을 세(稅) 내어 묘사를 봉행하였으며, 문중의 공론으로 선세(先世)의 규범에 맞게 재사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후손 휘(諱) 상규(相圭)가 지은 청석재사중건기(靑石齋舍重建記)에는 이 재사(齋舍)를 같은 해에 중건(重建)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것은 초옥(草屋)을 세(稅) 내어 묘사(墓祀)를 봉행(奉行)한 해를 청석재사의 시발(始發)로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
司猛公 諱 叔衡의 墓所 : 안동시 서후면 교리 |
사정공(司正公) 휘(諱) 개(玠) 공은 자(字)가 가옥(可玉)으로 증(贈)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휘(諱) 윤평(允平)의 판서공(判書公) 휘(諱) 인(靷)의 종증손(從曾孫)이다. 조(祖)는 중낭장(中郎將) 휘(諱) 후(厚)이고 부(父)는 횡성현감(橫城縣監)으로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贈職)된 휘(諱) 계경(啓經)이다. 모(母)는 정부인(貞夫人) 전주이씨(全州李氏)로 현감(縣監) 중유(仲由)의 딸이다. 공은 높은 인품에 비해 전해지는 행적은 소략한 편인데, 태종 16년(1416)에 출생하여 벼슬은 창신교위(彰信校尉) 부사정(副司正)을 지낸 것으로 되어있다. 공이 이 같은 음직을 받은 것은 학행(學行)으로 추천을 받아 제수(除授)된 것인데 덕망(德望)이 높아서 향당에서 추앙(推仰)을 받았다. 공은 의리(義理)를 아는 지사(志士)로서 단종(端宗)이 세조(世祖)에게 화를 당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인 솔밤으로 돌아왔다. 당시 공이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의 조카 원(源)을 사위로 맞이한 일화(逸話)는 지사(志士)로서의 처신(處身)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정공은 성종 8년(1477)에 향년 62세에 졸하였으며, 배위는 흥해배씨(興海裵氏)이며 묘소(墓所)는 안동시 서후면 교리 대표산의 금채곡(金釵谷)에 있다. 슬하에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별시위사맹(別侍衛司猛) 휘(諱) 숙형(叔衡)과 진사(進士) 휘(諱) 숙균(叔均)이다. 대표재사(大瓢齋舍) |
안동시 서후면 교리의 대표산(大瓢山) 남쪽 기슭에 있으며 휘(諱) 숙형(叔衡)의 묘제를 위한 재사 |
대표재사는 별시위사맹(別侍衛司猛) 휘(諱) 숙형(叔衡)의 묘제를 위해 1847년(헌종 13)에 창건한 안동시 서후면 교리의 대표산(大瓢山) 남쪽 기슭에 있는 재사이다. 재사가 있는 곳을 <함백>이라 부르기 때문에 이 재사를 <함백재사>라고도 한다. 대표재사는 공의 부친(父親) 부사정공(副司正公) 휘(諱) 개(玠)의 청석재사(靑石齋舍)와 산소 등의 유적(遺蹟)과 함께 자리 잡고 있어서 이 일대가 안동권씨의 세거지(世居地)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공의 증조(曾祖) 휘(諱) 후(厚)는 창신교위(彰信校尉) 중랑장(中朗將)을 지냈으며 슬하에 휘(諱) 계경(啓經), 자경(自經), 민경(民經) 등 세 아들 중에 장자 계경(啓經)이 공의 조부(祖父)가 된다. 선교랑으로 횡성현감(橫城縣監)을 지낸 휘(諱) 계경(啓經)은 세조의 왕위찬탈 이후 단종이 화를 당함에 출사의 뜻을 버리고 향리인 송파로 돌아와 은거(隱居)하였다. 슬하에 개(玠)와 곤(琨)을 두었는데 장자인 개(玠)가 숙형(叔衡)의 부(父)이며 동생은 숙균(叔均)으로 진사(進士)이며 진솔회원(眞率會員)이다. |
慕魯堂 : 안동시 풍산읍 노리에 있으며 28세 휘(諱) 운창(運昌)의 정자 |
사정공(司正公) 휘(諱)는 개(玠)는 향중의 기덕(耆德)인 12인과 함께 우향계(友鄕稧)를 주창하였으며 차자 곤(琨)은 우향계의 일원으로 그 손자 충재(冲齋) 휘(諱) 벌(橃)이 귀(貴)하게 되어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贈職)되었으며 슬하에 사영(士英), 사빈(士彬), 사화(士華), 사수(士秀)가 있다. 배위는 영인(令人)인 진안조씨(眞安趙氏)로 문정공(文貞公) 용(庸)의 손녀(孫女)이고, 충순위(忠順衛) 삼인(三仁)의 딸이며 장자(長子) 침(琛)은 참봉(叅奉)이고, 차자(次子) 림(琳)은 사직(司直)이며, 여서(女婿)는 생원(生員) 금오(琴梧)이다. 묘소는 대표재사의 오른편 산의 자좌(子坐)에 있으며, 바로 뒤에는 배위인 진안조씨의 무덤이 있고 맨 위에는 증손부(曾孫婦)인 영양남씨(英陽南氏)의 묘소가 있다. 모로당(慕魯堂)과 경모재(敬慕齋) |
敬慕齋 : 안동시 풍산읍 노리에 있으며 28세 휘(諱) 운승(運升)의 정자 |
안동시 풍산읍 노리에 모로당(慕魯堂)과 바로 아래 자리 잡은 경모재(敬慕齋)가 있다. 모로당(慕魯堂)은 28세 휘 운창(雲昌)의 정자이며 운창은 26세 자(字) 계숙(繼叔) 호(號) 토암(土菴)인 증(贈) 좌승지(左承旨) 휘(諱) 승서(承緖)의 손자이고, 증(贈) 호참(戶參) 자(字) 자정(子挺) 휘(諱) 수안(秀安)의 장자이다. 운창(運昌)은 이밀암(李密菴)의 문인(門人)으로 문집(文集)이 있다. 경모재(敬慕齋)는 28세 휘(諱) 운승(運升)의 정자이다. 운승은 자정(子挺) 휘(諱) 수안(秀安)의 차자이고 자(字)가 진보(晉甫)이고 증(贈) 정부인(貞夫人) 고령박씨(高靈朴氏)의 소생이다 |
中郎將 諱 自經의 墓所 : 안동시 풍산읍 노리 마감내산(麻甘內山) |
사은공(沙隱公) 휘(諱) 산 공(公)은 16세 창신교위(彰信校尉) 응양위(鷹揚衛) 중령중랑장(中領中郞將) 휘(諱) 후(厚)의 손자(孫子)이고, 17세 선교랑역청하횡성현감(宣敎郞歷淸河橫城縣監)을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증직된 계경(啓經)의 동생인 중낭장(中郞將) 휘(諱) 자경(自經)의 차자(次子)인데 장자(長子)인 형(兄)은 부장(部將) 휘(諱) 인(璘)이다. 중랑장(中郞將) 휘(諱) 자경(自經)의 생졸년(生卒年)은 미상(未詳)이며, 묘소는 마감내산(麻甘內山) 건좌(乾坐)에 있고 배위(配位)는 숙인(淑人) 경주김씨(慶州金氏) 부(父) 징(澄)이며 생졸년(生卒年)은 미상(未詳)이고 묘소(墓所)는 합폄(合窆)되어있다. 공(公)의 자(字)는 광일(匡一)이고 호(號)는 사은(沙隱)으로 단종(端宗) 삼년(三年)인 서기 1455년 을해(乙亥) 문단종손위당화잉기(聞端宗遜位黨禍仍起)로 부동(府東) 사월촌(沙月村)에 은거(隱居)하였는데 관작(官爵)은 증(贈) 통훈대부(通訓大夫) 호조좌랑(戶曹佐郞)이었다. 태종(太宗) 무술생(戊戌生)이고 세조(世祖) 삼년 정축(丁丑) 10월에 졸(卒)하였다. 배(配)는 증(贈) 숙부인(淑夫人) 영양남씨(英陽南氏) 부(父) 낭장(郎將) 치원(致遠)이며 을미생(乙未生)이고 경진(庚辰)에 졸(卒)하였다. 묘소(墓所)는 안동시(安東市) 예안면(禮安面) 미질리(美質里) 아마리 무지장(茂地場)에 자좌(子坐)로 합폄(合窆)되어 있다. |
沙隱公 諱 산의 墓所 : 안동시 예안면 미질리 |
사은재사(沙隱齋舍) 사은재사(沙隱齋舍)는 안동시(安東市) 임동면(臨東面) 사월리(沙月里)에 있다. 1960년에 창건(創建)하였으나 1979년 안동댐 건설(建設)로 사월(沙月) 마을 위 약수골로 이건(移建)하였다. 사은재사(沙隱齋舍)는 사은공(沙隱公)이 사월(沙月)에 터를 잡아 은거(隱居)하며 덕(德)을 쌓던 곳이다. 전국의 많은 자손들이 해마다 제향(祭享) 때 모여 조상을 우러러 추모하는 곳이다. |
沙隱齋舍 :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 약수골에 있는 사은공의 묘제를 위한 재사 |
생원공(生員公) 휘(諱) 민경(敏經) 공(公)은 공민왕 23년(1374년) 문과(文科)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고, 청백(淸白)으로 발탁(拔擢)되어 奉翊大夫(봉익대부) 예의판서(禮儀判書)에 오르고 가선대부검교한성부윤(嘉善大夫檢校漢城府尹)을 지낸 15세 판서공(判書公) 휘(諱) (靷)의 손자(孫子)이다. 창신교위(彰信校尉) 응양위(鷹揚衛) 중령중랑장(中領中郞將)인 16세 휘(諱) 후(厚)의 삼자로 생졸년(生卒年)은 미상(未詳)이고 묘소(墓所)는 부서(府西) 송현(松峴) 자좌(子坐)에 있다. 독자(獨子)는 휘(諱) 덕기(德箕)이며 묘소(墓所)는 상동(上同)이다. 손자(孫子)는 휘(諱) 응숙(應叔)이고 증손(曾孫)은 휘(諱) 성길(成吉)이며 부정(副正)으로 배위(配位)는 안동김씨(安東金氏) 부(父) 언향(彦香)이며 묘소(墓所)는 상동(上同)인데 삼대(三代)가 모두 독자(獨子)이다. 僕射公派 總務部長 權五翼 補完 監修 會長 權啓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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