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 순례 38] 新寧의 慕軒 炭翁 九宜軒 三代 (종보 제398호 2008.8.1)
작성일 12-04-3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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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순례 38] 新寧의 慕軒 炭翁 九宜軒 三代 |
모헌공(慕軒公) 휘(諱) 질(日至 ) 공은 복야공파 윤보(允保)의 5대 종손으로 조부는 문과에 장원하여 서주군수를 지낸 시중(時中)이다. 공은 공민왕 7년에 안동시 법상동 상촌에서 출생하여 효행으로 개령현감을 제수 받았으며 안동 성서문 밖에 정려각을 세웠다. 孝子前縣監權晊之閭란 비문의 주서는 “文學行誼로 嗚于當世하고 母歿廬墓三年 一不下家 天縱大孝...孝遷 開寧縣監 爲始 12州 守令歷” 모친이 별세하여 3년 여모를 살면서 한 번도 집에 내려오지 않았으며 임오년에 정려문을 세웠으며 개령현감등 12주 수령을 역임하였다. |
모헌, 구의헌 재사전경(경북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모산) 공은 세종 27년에 졸하니 수 85세이고 간찰(簡札)과 시문, 유묵이 보물 66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려가 안동에 세워졌는데 일제 시 철거되었다 2000년 성곡동 153번지 묘소 지령(地嶺)인 안동 湖岸에 세워 보존중이며, 유교문화권 개발사업으로 부득히 장자 탄옹 시(偲)의 묘소와 함께 공의 묘소와 새로운 정려비를 2006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추곡 모산으로 천장 복원하였다. 공은 학문과 덕업이 중후하고 재임 시 선정을 베풀었으며 모헌유묵시첩(慕軒遺墨詩帖)2권이 역시 보물 668호로 지정되어 안동국학진흥원에 보관되어있다. 공은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는 시(偲)집의, 차자는 황(偟)교리, 그리고 선(僊)은 현감을 지냈다. 집의의 아들은 구의헌(九宜軒) 열(扌列)이고 구의헌의 현손이 영천성 전투에서 왜적을 섬멸시킨 충의공 권응수(忠毅公 權應銖) 장군이다. 탄옹 (炭翁) 휘 시 (諱 偲) |
모헌공 권질 정려각(화산면 가상리-구비는 안동호안에 보존) |
공은 모헌공의 장자로 고려 우왕 12년 안동에서 태어나 태종 8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태종 11년 식년시 문과병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正字)가 되었다. 세종 2년 지제교, 세종 5년 이조좌랑, 세종 6년 집현전 교리, 세종 7년 사헌부 지평, 병조정랑이 되었다가 세종 11년 청풍군수로 나갔다. 세종 17년 양산군수, 세종20년 영덕군수, 세종 25년 선산부사, 세종 31년 안악군사로 나갔다. 이듬해 임소에서 향년 65세로 졸하니 선고묘 뒤에 장사하였는데 비문은 채산 권상규가 지었다. 그후 사헌부 집의(執義)로 추증되었으며 세조 1년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공은 9아들과 1녀를 두었는데 제 7남이 구의헌(九宜軒)이고 유시(遺詩)가 있다. (공은 안동부 교수(敎授)시 鄕射堂을 건립하고 기문을 찬하였다. 九宜軒 諱 扌列 |
구의헌 열의 유허비(화남면 가상리) |
공은 안동부 성서쪽 상촌 구제(舊齊)에서 출생하여 어릴 때부터 뜻이 독실하여 학문을 좋아하였고 여섯 형과 두 아우와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세조 11년 문과(文科)정과(丁科)에 급제하였다. 공은 이조좌랑으로 무안현감(務安縣監)에 보임되어 치적이 가장 뛰어났으며 사헌부 지평으로 특배(特拜)되었고 광주목사(光州牧使)에 이르렀다. 공은 성품이 단아하고 호인이라 남을 먼저 배려하는 뜻이 곧았다. 학문과 행의(行誼)가 있었는데 연산군 2년에 시사(時事)가 그릇되자 광주목사로서 항소를 올리고 불청되자 추곡의 보덕공 휘 조광덕(趙匡德)을 찾아 신녕추곡(新寧楸谷)에 정자를 짓고 구의헌이란 현판을 달아 자호로 하고 소요자락(逍遙自樂)하면서 학문에 심취하였다. |
열의 유훈인 구의 절목 |
공은 자손을 가르치는 유훈으로 구의절목(九宜節目)을 만들어 후학들에게 강학하였는데 까마귀와 학을 벗하였다 하여 유허로 오학정(烏鶴亭)이 있었으며 자모산과 백학암을 따서 이름을 붙인 것인데 참판 양효지(楊孝智)가 그 사실을 적어 기문을 만들었다. 공의 구의절목은 효충제신인의예지경직(孝忠悌信仁義禮智耕織)이니 모두 어른을 섬기고 몸을 닦는 도였다. 공은 중종 2년 고종하니 추곡모산에 안장하였다. 공은 3남2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처원(處元)으로 생원이고, 2남은 처형(處亨)충순위, 3남은 처정(處貞)인데 증직으로 호조참의였다. 처원은 2남을 두었는데 장자는 현(鉉)으로 참봉을 지냈고 차남은 치(錙)이며, 처형은 준(準)을 두었다. 처정은 5남을 두었는데 장남은 학의재(學宜齋) 난(鸞)이며 선조조에 가선대부 호조참판으로 추증되었고 봉(鳳), 붕(鵬), 응(鷹)은 모두 충순위이며 황(凰)은 호조참판이다. 난은 5子를 두었는데 장자 덕충(德忠)은 참봉이며 차자 덕신은 권응수 장군의 선친으로 학행으로 향당(鄕堂)의 존모(尊慕)가 있었으며, 훗날 순충적덕보조공신에 숭정대부 의정부 우찬성(右贊成)으로 추증되고 능라군(綾羅君)으로 추증되었다. 덕인(德仁)은 대호군(大護君), 덕의(德義)는 충순위(忠順衛), 덕례(德禮)는 호군(護君)이다. |
모헌공과 구의헌공을 모신 사당 원모재(화남면 모산) |
처정의 차남 봉(鳳)의 장자는 덕수(德守)며, 3자 붕(鵬)의 장자 덕온(德溫)은 통사랑을 지냈고, 응(鷹)의 장자는 덕웅(德雄)이다. 황(凰)은 4남을 두었으니 장자 덕문(德文)은 참봉, 덕무(德武)는 선조16년 무과(武科)급제하여 어모장군(禦侮將軍)이며 우찬성에 추증되었다. 덕시(德時)도 선조 27년 별시무과(별시(別時武科)급제하였으며 선조24년 곽재우의 팔공산회맹에 참여하고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고 선조40년 절충장군, 광해9년 동지중추부사에 오르고 광해 11년 숭록대부(崇祿大夫)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올랐다. 덕성(德成)은 훈련원정이다. |
좌 : 임난신렬의병창의지기념비 중 : 모산입구표지석 우 : 모헌탄옹양세묘도비 |
난의 장남 덕충(德忠)의 아들 운(雲)은 명종18년 무과(武科)하여 임난시 의병을 일으켜 부장이 되었다. 난의 차남 덕신은 4남을 두었으니 충의공(忠義公) 응수(應銖)는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지내고 화산군(花山君)에 훈봉(勳封)되었고(안동권씨종보 제357호에 게재) 응전(應銓)은 임난에 창의하여 첨사(僉使)이르러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고, 응평(應平)은 선조17년 別試武科하여 임난에 영천 창암에서 가등청정군을 기습하였으며 선무원종공신1등에 녹훈되고 졸후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고 응생(應生)은 수문장으로서 4형제와 함께 창의하여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덕인의 아들 응추(應錘)는 훈련부장이며, 덕의(德義)의 아들 응명(應明)은 참봉이고 덕례(德禮)의 아들 응서(應瑞)는 호군이다. |
권응수장군 조부 난의 재실 원모재(화남면 가상리) |
충순위 봉(鳳)의 자 덕수의 아들 응득(應得)은 현감이며, 붕(鵬)의 자 덕온(德溫)은 2남을 두었는데 응심(應心)은 우후(虞侯)로 정유재란에 순국하여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고 병조참판(兵曹參判)으로 추증되었다. 차자 응기(應箕)도 참전하여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고 그후 무과(武科)하여 첨정에 이르렀다. 응(鷹)의 자는 덕웅이며, 황(凰)의 덕문의 아들은 응현(應鉉)이며, 덕무는 2남을 두었는데 응우(應宇), 응주(應宙)이다. 덕시는 3남을 두었으니 장남은 응경(應經), 응형(應衡)은 통덕랑이며 응도(應道)는 현종3년 증광시에 생원으로 급제하고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하던 풍영정(風詠亭)이 화산면 가상리에 보존되어있다. |
위쪽이 권질의 묘소이고 아래가 권시의 묘소이다.(화남면 가상리 모산) |
영천시 화남면 가상리에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 아래에는 “신녕입향조이신 九宜軒 諱 扌列(1424~1507)공께서 광주목사 재직시 연산의 난정을 상소하고 안동으로부터 추곡리로 은거하여 나무를 심었으니 후손들이 대를 이어 나무 아래에서 학문을 강론하고 임진왜란을 당하여 형제 종질들이 여기에서 창의하여 화산군 권응수 공의 공적이 두드러졌지만 아무도 자신의 공적을 자랑치 않음은 예의가 가풍이었으리라. 자손들이 모두 여기서 德行을 본다면 구의헌공께서 후손들에게 내려준 음덕이 클 것이라” 하였다. 나무 안으로 100보에 구의헌공의 유허비가 말해주고 있으며 임난신녕의병창의지(壬亂新寧義兵倡義地) 기념비가 있고 모산(茅山) 입구에 구의헌공 묘소 표지석을 따라 모산에 이르니 안동으로부터 이설된 모헌공(慕軒公)의 정려각(旌閭閣)이 있고 재실에는 구의헌 열(扌列 )을 위한 모선재(慕先齋), 탄옹 권시(炭翁 偲)를 위한 영모재(永慕齋) 호조참의 처정(處貞)을 위한 태암재(泰菴齋) 현판이 걸려 있다. 모산에 구의헌 열의 묘와 공의 3子 참의공 묘가 있는데 그 위로 모헌공 권질의 묘가 안동에서 이장되어 왔고 그 아래 탄옹 권시의 묘 역시 이장되어 있다. 그리고 가상리 북쪽으로 권응수 장군의 조부 참판공 난(鸞)의 묘소와 재실인 모원재가 있다. |
구의헌 렬의 묘소(화남면 가상리 모산) |
<자료제공 : 영천 권오본, 기사 : 賢奉 權景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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