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현(鉉)자손과 규헌공(葵軒公) 주(鑄)자손들(종보483호)20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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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737회 작성일 15-08-28 10:23본문
지난호는 현성군 용(鏞)의 아들 현성군 휘 정주(定柱)의 자손들을 소개하였다. 이번호는 형(衡)의 차자 현(鉉), 4子 균(鈞), 5子 주(鑄)의 제 자손을 소개한다.
16世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 현(鉉)의 자손
공의 아들은 상호군(上護軍) 경(京)과 효충(孝忠)이 있으며 손은 군수 효근(孝勤)이고 증손은 맹린(孟麟), 중린(仲麟), 숙린(叔麟), 계린(季麟)을 두었다.
중린(仲麟)은 세조 3년 별시문과 급제하여 성종 4년 예빈시부정을 지내고 성종 6년 선농제(先農祭)에서 기읍령을 하고 성종 7년 광주목사로 부임하였다. 성종 14년 당상관에 오르고 성종 16년 예조참의(禮曹參議), 19년 대사간(大司諫), 23년에 춘천부사로 나갔다. 그러나 후사가 없고 묘소도 알 수 없다.
맹린(孟麟)은 선(選), 적(迪), 우(遇) 세아들을 두었으며 선은 감역(監役)을 지냈으며 현손 덕곤(德鵾)은 인조 13년에 출생하여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오르고 숙종 41년에 졸하니 수 81세였다. 묘소는 괴산군 소수면 옥현리에 있다.
16世 양효공(良孝公) 호(鎬)는 익대공신에 녹훈되고 판후덕부사에 이르렀다. 아들 괴정공(槐亭公) 담(湛)은 우왕 6년 문과 급제하고 태종 5년 경기도 관찰사(觀察使), 세종 1년 황해도 관찰사가 되고 세종 3년 자헌대부(資憲大夫) 전주부윤(全州府尹)이 되었다.
16世 화산군(花山君) 균(鈞)과 17세 문순공(文順公) 홍(弘)
균(鈞)은 공민왕 19년 공부상서(工部尙書), 조선 개국 후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아들은 이다.
문순공(文順公) 홍(弘)
문순공은 공민왕 9년 출생하여 우왕 8년 문과 급제하여 춘추관 검열이 되고 조선조 태종 2년에 장녀가 가례(嘉禮)를 치르고 태종의 후궁 의빈(懿嬪)이 되자 가정대부(嘉靖大夫) 영가군(永嘉郡)에 봉해졌다. 태종 4년 첨서승추부사가 되고 태종 7년 진헌사(進獻使)로 명(明)나라에 가고 태종 10년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가 되어 사은사(謝恩使)로 명에 다녀왔다. 태종 14년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태종 16년 지돈령부사(知敦寧府使), 세종 원년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오르고 12월에 영접사(迎接使)로 의주에 나가 사신을 맞았다. 세종 2년 영가군(永嘉君)이 되고 12월 진하사(進賀使)가 되어 명에 다녀오고 세종 5년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가 되고 이어 제조(提調)가 되고 세종 15년 유관 등과 함께 기영회(耆英會)를 만들었다. 세종 28년 졸하니 수 87세였다. 공은 성품이 온아하고 사람을 공손히 접대했으며 전서(篆書)와 예서(隸書)를 잘 써서 문묘(文廟)의 비문도 썼다. 시호를 문순(文順)으로 내리니 학문에 힘 쓰고 묻기를 좋아하여 문(文)이고 현인에게 유순하고 남을 사랑하여 순(順)이다.
유고로 쌍당집(雙塘集)을 남겼는데 찾지 못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적성 고을 서쪽에 있는데 실전하였다. 아들은 사간(司諫) 강(康)이며 증손 숭조(崇祖)의 후손들이 있다.
16世 규헌공(葵軒公) 주(鑄)와 자손들
주(鑄)는 우왕 9년 여주 신륵사 장경각(藏經閣)에 글씨를 썼는데 봉익대부 판전교시사 진현관(進賢冠) 제학(提學)으로 자서하였다. 조선조에 도평의사사(都評議司事)가 되었으며 태조 3년 졸하였는데 직은 밀직제학(密直提學)이다. 졸기에 성품이 바르고 성실하였으며 충주와 황주목사가 되어 혜정(惠政)을 베풀었으며 내직으로 지신사(知申事) 시에 성균관 시관(試官)을 하였다. 묘소는 경기 풍덕군 망포의 냉정동에 있다.
아들은 사간공(司諫公) 훈(壎), 증(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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