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현조
작성일 12-04-2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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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高麗統一 大殿(고려통일대전) |
고려통일대전은 사단법인체이기는 하지만 高麗宗廟(고려종묘)라 할 수 있으며 현재 권문에서는 여섯 분이 奉安(봉안)되었으며 奉安先祖(봉안선조)와 시조 太師公(태사공) 봉안문은 아래와 같다. 始祖太師公 權幸 시조태사공 권행 13世 文正公 權溥 13세 문정공 권부 14世 正獻公 權喣 14세 정헌공 권후 14世 思復齋 權定 14세 사복재 권정 15世 密直公 權重貴 15세 밀직공 권중귀 15世 永嘉君 權上佐 15세 영가군 권상좌 |
三重大匡 太師 權(幸) 先生 奉安文 |
大抵 先賢의 古法을 좇아 특수한 行蹟을 들어냄은 血痕에 합당한 忠賢을 揀擇하여 國廟에 빛을 더하고자 함이로다. 嗚呼 先生은 權氏의 始祖로서 原姓은 新羅의 宗姓이었도다. 일찍이 新羅의 별장으로서 古昌郡을 지키시더니 때에 甄萱이 慶州에 侵入하여 景哀王을 弑害함에 王太祖가 나아가 救援한데 甄萱으로 더불어 서로 讓步하지 않았도다. 先生이 群衆에게 議論하기를 甄萱은 義理로 함게 하늘을 일수 없다. 어찌 王太祖에게 歸附하여 그 痛憤을 씻지 않으리오 말하고 드디어 太祖를 迎接하여 歸附하였도다. 太祖는 能히 炳幾達權하다 稱歎하고 이내 權氏를 賜姓하고 古昌郡을 食邑으로 삼고 安東府로 昇格시켰도다.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려서 三韓統合의 慶事가 크게 일어나니 太祖는 先生을 특별히 襃彰하여 三韓壁上功臣을 삼고 후에 三重大匡 太師를 贈職하였도다. 太祖의 盛德은 太嶽을 오르는 해와 같고 先生의 功績은 大江을 흐르는 물결과도 같았도다. 그 樹勳을 생각하면 어찌 闡揚을 느추리오 이에 義를 崇尙하는 많은 선비들의 議論이 齊發하여 터를 統一동산에 잡아 수년만에 저 翼然한 새 大殿을 세웠도다. 태양이 하늘에 빛남이여! 그 功勳은 千秋에 遺傳할 것이요 天神이 忠靈을 保佑하심이여! 香火는 萬世에 不滅함이로다. 이에 高麗宣揚會 有司는 聖祖를 좇아 감히 尊靈을 開國室에 奉安하고 精誠으로 芬苾을 先生의 靈前에 바치나이다. 바라옵건대 英靈이시어! 이에 降臨하사 이에 明禋을 歆饗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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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權門의 相卿臣(상경신) |
우리 安東 權門(안동권문)에서 封君(봉군) 政丞判書(정승판서)를 지내시고 功臣錄(공신록)에 오르며 諡號(시호)를 여러분이 받으셨다. 賢祖(현조)님의 偉業(위업)을 儒林(유림)에서 기리기 위해 書院(서원)에 配享(배향)되신 분도 많고 孝行 忠節(효행 충절)이 높으신 분도 많다.(표 참조) |
(3) 一家 九封君(일가 9봉군) |
高麗後期(고려후기) 1300年代 樞密公派(추밀공파) 13世 菊齋公(국재공)一家(일가)는 모두 封君(봉군)을 받았으니 우리나라 歷史上(역사상) 前無後無(전무후무)한 光榮(광영)이었다. |
(4) 賢祖(현조) |
> 一齋 權漢功과 仲達, 仲和 일재 권한공 중달, 중화 |
2. 政丞 判書(정승판서)를 지내신 분 |
(1) 政丞(정승)을 지내신 분 |
(2) 贊成(찬성)을 지내신 분 |
日旦 (樞密公派12世) 贊成事 大提學 贈 僉議政丞 諡號 文凊 단 (추밀공파12세) 찬성사 대제학 증 첨의정승 시호 문청 |
(3) 判書級 正二品職을 지내신 분(高麗 從二品以上) |
판서급 정2품직 (고려 종2품이상) |
(4) 大韓民國 長官을 지내신분 |
重東중동 (副戶長公派32世) 勞動部長官(노동부장관) 仲敦중돈 (僕射公派33世) 國防部長官(국방부장관) 承烈승렬 (樞密公派34世) 法務部長官(법무부장관) 彛赫이혁(樞密公派34世)文敎部長官 保健社會部長官 環境處長官 寧海영해 (樞密公派34世)國防部長官 安全企劃部長안전기획부장 寧珏영각 (副正公派34世) 建設部長官(건설부장관) 五琦오기 (同正公派35世) 統一院副總理(통일원부총리) 五柄오병 (僕射公派35世) 法務部長官(법무부장관) 肅一숙일 科學技術處長官(과학기술처장관) 奇洪기홍 勞動部長官노동부장관 鎭鎬진호 安保輔佐官안보보좌관 五奎오규 (樞密公派34世) 副總理(부총리)兼 經濟企劃院長官 |
(5) 淸白吏 |
璸 (檢校公派18世) 金山郡守(生祠堂, 遺愛碑) 司諫 典翰 빈 (검교공파18세) 금산군수(생사당, 유애비) 사간 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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