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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순례52] 副戶長公 諱 時中과 後孫들 (종보417호 2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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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4-30 14:26 조회4,8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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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순례52] 副戶長公 諱 時中과 後孫들
副戶長公派祖로서 1794년 후갑인보에 처음 입록되었다. 이는 외손 선성김씨(宣城金氏) 세보에 1390년 장적(帳籍)에 권서정(權瑞正)은 초명이 백시(伯時)이고 그 아들은 시중(時中)이며 그 아들은 윤화(允和), 그 아들은 만기(萬紀 12世)라 하였다.


副戶長公派祖로서 1794년 후갑인보에 처음 입록되었다. 이는 외손 선성김씨(宣城金氏) 세보에 1390년 장적(帳籍)에 권서정(權瑞正)은 초명이 백시(伯時)이고 그 아들은 시중(時中)이며 그 아들은 윤화(允和), 그 아들은 만기(萬紀 12世)라 하였다. 또 고창인 오운(吳澐)의 가승에 월성인 손보(孫甫)의 배위 권씨의 父는 신행(愼行)이고 祖는 용화(用和), 曾祖는 시중(時中)이라고 하였다. 이로서 9世 백시는 수중(守中)과 시중(時中)을 둔 것으로 확인됨으로써 수중은 종파(宗派)를 이루고 시중은 부호장(副戶長)을 지냄으로 부호장공파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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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정(안동시 태화동808-1) 1935년신축한 파족간 강독과 수양을위한 정자

공은 고려 희종 1년(乙丑 八月)에 쓴 친필 간찰 등 2점의 유묵을 남겨 정석씨가 소장하고 있는데 10世 시중부터 16세 량(樑)까지와 20世 종원(宗元)의 개석정기(介石亭記)까지 유묵을 31世 국담(菊潭) 태연(台淵)이 정리하고 화성세적(花城世蹟)이라 하였다.

공의 아들은 신기도령(神騎都領) 윤화(允和)와 호장공 용화(用和)이며, 손은 초시에 급제한 만기(萬紀), 호장공 신행(愼行)이며 증손은 합문지후(閤門祗侯)를 지낸 형중(衡重), 호장공 양(養)이다. 형중은 벼슬이 종3품 참상(參上)에 올랐다. 현손은 득추(得錘), 성(省), 체(棣)이고 5대손은 6남 3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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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휘 처선(중앙 우) 윤공, 윤량, 21세 원세의 단소(안동시 옥동)

그후 윤화(允和)의 5대손 16世 평(枰)의 증손 처선(處善)은 윤공(允恭)과 윤량(允良)이 대를 이어 윤공의 손은 율리계(栗里系), 대문내계(大門內系)를 이루고 윤량의 손은 옥리계(玉里系)를 이루었다.

용화(用和)의 5대손 16世 량(樑)의 현손은 지호공(知湖公) 종원(宗元)이고 종원은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21세 유주(有柱)의 손이 서부계(西部系), 유제(有梯)유추(有樞) 유기(有杞)의 의 손이 검암계(儉岩系), 유릉(有棱)의 손이 동부계(東部系)를 이루었는데 유릉의 자손이 가장 번성하였으며, 10대손이 국담 태연이다. 안동시 태화동 808-1 어가곡에 부호장공파 종원들이 예손간 친목과 효도를 강독과 수양의 자리를 마련코자 1935년 일원정(一源亭)을 창건하고 용암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를 마시며 파족간 우애를 다지자는 정신적지주인 용암동천(龍巖洞天)비를 세웠다.(종보398호) 일원정은 창건한지 70여년세월이 흘러 퇴락하여 종의(宗意)를 모아 2007년 봄 중수(重修)하였다. 일원정은 물은 천만갈래로 나누어 흐르나 그 근원은 한 줄기이니 파조를 중심으로 숭조돈목하자는 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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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안망동 묘역(16세 양 이하 5세조)

壽富谷追遠齋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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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부곡 재사(안동시 옥동) 19세 휘 처선 이하 3세조를 위한 추원재

안동시 옥동(玉洞)에 수부곡재사가 있는데 이 재사는 19世 휘 처선(處善)과 아들 선무랑(宣務郞) 휘 윤공(允恭)과 호장공 휘 윤량(允良), 장손 군자감정 휘 원세(元世)를 위하여 제사를 모시는 추원재이며 옥동에 위 네 분의 단소를 설단하였다. 원세의 5세손 동추공(同樞公) 휘 익령(益齡)은 효도와 학행으로 향당의 추종을 받았으며 후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총관(副摠管)을 지냈다.

深遠齋舍와 知湖公의 閒友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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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질재사 16세 양, 17세 준민, 18세 중형, 19세 경용, 20세 종원을 위한 재사(안동시 안막동)

심원재사는 안동시 안막동 며지곡에 16世 호장을 지낸 휘 량(樑)과 아들 호장인 휘 준민(俊敏), 손 호장 휘 중형(仲衡), 증손 휘 경룡(景龍), 현손 지호공(知湖公) 휘 종원(宗元)의 5세조 묘역이 있다.

지호공 종원은 자는 군백(君伯)이고 호는 지호(知湖)이다. 선조 19년에 출생하여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학행이 독실하였는데 광해의 폭정이 있자 뜻을 버리고 무주자(無住子) 대사간 홍호(洪鎬)와 함께 수월암(水月庵) 산사(山寺)에 들어가 별업(別業별채)을 지어 지냈는데 인조반정 후 학행으로 추천되었으며, 사후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추증되었다. 수월암 한우도(水月庵 閒友圖)에는 권종원(權宗元) 홍호(洪鎬) 권첨(權詹) 권상충(權尙忠) 권상현(權尙賢) 권상원(權尙元) 스님 등 9인이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 매우 해학적(諧謔的)이며 족자로 보존되어 있다.

아들은 장자 유주(有柱,서부계), 차자 유제(有木弟)는 호장이고 3남 유추(有樞), 4남 유기(有杞), 5남 유릉(有棱)으로서 유릉(有棱)은 가선대부에 올랐다. 4남까지의 손은 검암계(儉岩系)이고 유릉의 손은 동부계(東部系)이다. 유주(有柱)의 아들은 득철(得喆)이며 호장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고, 손 치평(致平)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고 치중(致中)은 호장이다.









좌로부터 지호공 종원, 대사간 홍호. 권첨, 권상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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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질과 친우 스님 도기

醉夢軒 휘 斗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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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봉 두하의 효자비(안동 옥정동에 세웠다가 민속박무관으로 기증하여 보존되고 있다. )

취몽헌 휘 두하(斗夏)는 지호공 종원(宗元)의 10대손으로 철종 4년 안동 율세동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효의 큰 뜻을 깨닫고 장성하여 명심보감 효행편을 즐겨 읽고 실천에 남달랐다. 조부가 10년간 환우에 눕자 시약하며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어 선고의 병환이 깊자 뒤뜰에 단을 세우고 노천기도를 하던 중 꿈에 백발노인이 현몽하여 자초(紫草)를 찾으라 하여 뒤뜰에서 구해 시약하니 완쾌하였다. 칭송이 자자하여 조정에 계문되자 순종 원년 마을에 정효각(旌孝閣)을 짓게 하였다.

이 정효각은 안동 옥정동에 목조와가로 지었으나 증손 정석(正奭)에 의해 율세동에 대리석 비각으로 이건하였으며, 도시계획에 밀려 현재는 안동 민속박물관에 기증하여 정원에 세워져 있다. 공의 관직은 참봉 친왕부찬위(親王府贊尉)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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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봉 권두하의 려비와 무인년에 세운 도화동천 표지석

菊潭公 휘 台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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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담 권태연 정삼품 통정대부 궁내부 검무관 칙명과 국담 초상

국담공(菊潭公) 휘 태연(台淵)은 두하의 아들로 고종 18년 안동 율세동에서 출생하여 학행으로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궁내부검무관(宮內部檢務官) 정3품 통정대부 법부참서관(法部參書官)이 되었다. 집이 60간이고 3천석의 부자였는데 공은 경술국치 이후 관민의 교우를 넓히면서 사회 문화 교육 등 각 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하면서 일제 초반기 안동이 주택난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자금을 동원 개량주택건설에 힘을 쏟아 ‘인심 좋은 권참사’라 회자되었으며 갑술년 대홍수에 거액을 출연하면서 소외계층을 위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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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담 태연의 유품 좌상 : 전골냄비, 우상 : 안동소주를 내리는 독, 아래 : 청자 백자

안동도호부사(安東都護府使)를 지내고 농상공부대신(農商工部大臣)을 역임한 東農 김가진(金嘉鎭)이 상해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였는데 그에게 거액의 독립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8.15 해방 직전에 뒤늦게 알려졌다. 1915년 안동 남문동에 안동주조회사를 설립하여 “제비원소주”라는 상표로 우리나라 전국과 중국.일본에 보급하는 명품을 만들었다. 한편 수공업으로 생산하는 안동포를 모아 마포조합을 설립하여 품질을 향상시켰다. 더불어 서문시장부근에 도서관을 개설하고 신학문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1933년 안동농림고등학교를 설립토록 거액의 자금과 대지를 희사하고 1942년은 안동공립고등여학교 설립에 협찬하였다. 또, 임종 전에 소작인들에게 소작지를 내 놓으면서 반목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좌중을 감동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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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공 집에 다녀간 인사들 : 중앙 3인 좌로부터 신익희국회의장, 이범석장군, 권중효(태연공 3남)

공은 평소에 집에 손님이 오는 것을 좋아하고 5대째 내려오는 전골요리는 한말 박영효, 권중현, 김가진 등 유명인사들이 다녀갔으며 광복후에는 신익희 이범석, 조병옥, 유진산, 장택상(사진)들이 안동전골을 맛있게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전골이란 말은 옛날 군사들이 전장에서 마땅한 조리기구가 없자 철로 만들어 썼던 전립(戰笠)으로 음식을 끓여 먹던데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다. 정석씨가 소장하고 있는 전골냄비(사진)는 직경 25cm 이다.

(자료제공 : 부호장공파종회, 권정석 글,사진 현봉 권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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