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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지 순례 22 ] 西部嶺南의 寒泉齋와 鶴林書院 (종보 제377호 200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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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988회 작성일 12-04-3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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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지 순례 22 ] 西部嶺南의 寒泉齋와 鶴林書院
지난호까지 안분당(安分堂) 동계공(東溪公) 상암공(霜嵒公)에 관하여 연재하였다. 이번호는 금석공(金錫)의 장남인 20世 삼괴당(三槐堂) 휘 시민(時敏)과 그의 자손 그리고 조부인 사용(司勇)을 지낸 휘 계우(繼祐)의 조부인 16世 감정공(監正公)휘 집덕(執德)에 대해 소개한다.




西部嶺南의 安東權氏 入鄕祖 監正公 諱執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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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공 휘 집덕을 위한 재사(합천군 대병면 천동)

감정공(監正公)휘 집덕(諱執德)은 휘 사종(諱嗣宗)의 4남으로 조선조(朝鮮朝)에 군기감정(軍器監正)을 지냈고 조선 태종(太宗)년대 백형(伯兄) 집중(執中)의 현인비(顯仁妃)가 명(明)나라 영락제(永樂帝)의 후비로 간택되어 황실의 실권을 장악하기도 하였으나 마침내 명태종(明太宗)의 붕어로 속례(俗禮)로 비빈(妃嬪)들 마져 순장례(殉葬禮)를 치르든 때 대청(大廳)에서 나는 해동조선에서 잡혀온 처지인데 나 까지 죽이려느냐고 해악(害惡)을 저지렇다 하여 거역죄로 집안이 풍비박산(風飛搏散)되어 중형(仲兄)들은 안동 예천등지로, 공(公)은 낙향하여 삼가현 대평(三嘉縣 大平)에 터를 잡았으니 이분이 경남우도(慶南右道)일원에 세거하는 안동권씨 입향조(安東權氏 入鄕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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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공의 묘소(대병면 성리 천동)

공의 19대손 삼현(參鉉)의 묘갈명에 의하면 “공의 경력은 혁혁하였으나 생몰연대를 고증할 길 없으니 어찌 통탄치 않으리오. 고려 말 조선초기 정치가 어지러운 때 심산유곡으로 운둔하였으나 이로부터 공의 후손은 경남우도 여러 고을에 분포되어 만여호(萬餘戶)를 헤아릴 정도 갑족(甲族)으로 손색이 없다. 공의 음덕(陰德)으로 학문(學文)을 닦고 덕망(德望)을 넓혀가며 자손들이 번창하여 명문호족(名門豪族)이 되었으니 이 어찌 공의 음덕(隱德)이 아니겠는가. 공의 묘소는 지금 합천군 대병면 성리 천동(泉洞) 언덕에 있어 세월이 지나니 비갈(碑碣)이 훼손되어 다시 세우며 비음(碑陰)을 기록한다.”고 하였다. 공의 묘소는 한눈에 명당(明堂)임이 분명하니 그 자손들은 공의 후광을 입은 듯 현인(賢人)들이 많이 나왔다. 공의 배 강양이씨(江陽李氏)는 이조판서 휴(庥)의 딸인데 공이 숙환(宿患)을 얻으니 기지를 발휘하여 친정으로부터 바로 이 명당을 얻은 일화가 전래하여온다. 분묘는 4각형으로서 삼방에 화강암(花崗巖) 정장석(正長石)으로 짜여진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으니 문중에서 문화재(文化財) 신청 중에 있다. 묘소 배등(背嶝) 우측으로 300보 공(公)을 위한 재사(齋舍)인 한천재(寒泉齋)가 있어 이곳에서 10월 초8일 후손들이 모여 제향을 올리고 족의를 돈독히 하고 있다.

감정공은 3형제를 두었는데 장남은 검교중추부사(檢校中樞府使) 돈(惇)이고 차남은 사온서령(司醞署令) 회(恢)이며 삼남은 양산군사(知梁山郡事) 촌(忖)이다. 촌(忖)은 계우(繼佑)와 계복(繼福)을 두었는데 사용(司勇)을 지낸 계우(繼佑)의 후손은 합천(陜川), 산청(山淸), 함양(咸陽)등지에서, 계복(繼福)의 후손은 밀양(密陽) 진해(鎭海)등지에 세거하고 있으니 순차 연재한다.



士林이 鶴林書院을 創建하고 三槐堂을 奉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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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괴당 휘 시민 등 6현을 배향한 학림서원(거창군위천면 황산리)

삼괴당(三槐堂) 휘 시민(諱時敏)은 전옥서 봉사를 지낸 금석(金錫)의 아들로 세조(世祖)10년(1464년) 단성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총명하여 남보다 뛰어났으니 15세 때 학문을 이루었고 성종14년 20세에 유학으로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3등으로 합격하였다. 선생은 한훤당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요산요수(樂山樂水)를 즐기며 성리학(性理學)에 뜻을 품고 경서(經書)를 탐독하였으니 창화(唱和) 몇십편이 전해지고 있다.

선생은 연산군4년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 사림(士林)이 도륙되자 35세에 임천(林泉)으로 내려와 사마리에 집을 짓고 후학을 기르면서 뜰아래 괴목 세구루를 심고 그 집을 삼괴당(三槐堂)이라 이름하고 수신제가(修身齊家)하면서 자손을 훈육함에 반드시 효제(孝悌)로 하였고 선비를 맞이함에 금서(琴書)로 즐겼으며 문장(文章)과 행의(行誼)는 당대 여러 선비들이 높이 추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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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괴당 시민을 위한 재사(위천면 황산리)

선생은 중종 18년 향년 60세로 졸하니 묘소는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간좌로 장례하였으며 묘소 서록에 선생의 재사인 괴음재(槐陰齋)를 지었다. 묘소 아래 1마장 거리에 훗날 학림서원(鶴林書院)이 창건된다. 아들 일(逸)이 행장(行狀)을 짓고 현종(顯宗)10년 삼가현감(三嘉縣監) 이행익(李行翼)이 묘갈명(墓碣銘)을 찬하였으니 명(銘)을 소개하면 積學修行 從師大賢 晩歲遐隱 樂此林泉 君子有道 貽穀後昆 溫玉之美 褧錦其章 琢辭貞珉 昭視無疆 배움을 축적하고 행동을 닦음에 대현(大賢)을 스승으로 삼아 따랐네. 만년에 초야에 운둔하여 이 임천을 즐겼네. 군자는 도가 있으니 후손에게 착한 것을 주었네. 옥 같은 아름다움을 감추고 문채 비단을 홑옷으로 감쌌네. 비석에 글을 새기니 밝게 보임이 다함이 없구나.

숙종46년 사림의 발의로 위천면 황산리에 학림서원(鶴林書院)을 창건하여 관내 6현(權三槐堂 曺竹軒 姜博約齋 柳金川 郭猿巖 禹蘭谷)을 봉안하였는데 고종2년 훼철되었다가 1950년 유허비(遺墟碑)를 건립하고 1965년 학림서당(鶴林書堂)현판을 걸고 2001년 6현 문중에서 서원(書院)을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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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괴당의 묘소(위천면 황산리)

先生의 孫들 學行으로 報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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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일의 정자 (합천군 대병면 성리)일신정

선생은 1남5녀를 두었는데 장남 일신정(日新亭) 휘 일(逸)은 중종(中宗)조 사마시(司馬試) 생원(生員) 진사(進士) 양시에 합격하고 호조정랑(戶曹正郞)에 이르렀으나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자 뜻을 버리고 삼가현 대병면 성리의 삼산 아래 일신정(日新亭)을 짖고 후학을 가르치니 일신정이 공의 아호가 되었다. 죽전촌(竹田村)에는 바위에 공의 자필로 새겨진 글이 있고 황석탄(潢石灘) 여울위에 정자를 지어 일신정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세월이 흘러 일신정은 마을로 이건 되었고 문중의 공론과 자손들의 염원은 마침내 설암공(雪嵒公)의 장남 사영(四榮, 世一社會長)이 큰 협찬으로 1990년대 일신정(日新亭)을 개축(改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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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재공 휘 재춘의 악양서당(대병면 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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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괴당(三槐堂)의 14세손 만재공(萬齋公) 휘 재춘(載春)은 학행(學行)이 높고 언로(言路)가 숭고(崇高)하여 마을에 악양서당(岳陽書堂)을 세우고 후학(後學)을 가르쳐 많은 명인들을 배출하였으며 유고로 7책의 악양집(岳陽集)을 남겼다. 공의 15세손 설암공(雪嵒公) 휘 옥현(玉鉉)은 추연선생(秋淵)용현(龍鉉)의 수제자로 학덕(學德)이 높고 문(文)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종택 보고에 서책을 비롯하여 그 영광이 가득하다. 임오(壬午)2002년에 설암문집(雪嵒文集) 6권을 남겨 후세에 전하고 있다. <현봉 권경석>



< 글, 사진 : 현봉 권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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