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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옹주와 권대항(종보453호20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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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370회 작성일 13-02-2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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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옹주 묘역 앞에는 ‘옛촌 초계탕’이란 음식점(031-859-8123)이 있는데 초계탕 외의 메뉴가 막국수다. 정화옹주 묘역 답사를 하기 위해선 이집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 것이 편리하다. 문화재 탐방을 하다보면 조금은 넉살도 부릴 줄 알아야 하는데 마음 씀씀이가 넉넉해 보이는 이 집 아주머니에게 허락을 받으면 된다. 점심으로 6,000원하는 막국수 한 그릇이 푸짐하기도 하다. 어디 그 뿐인가 메밀 전 한 장이 서비스로 나온다. 메밀 전 안주삼아 막걸리 한 대접 쭈욱 들이키는 맛이 일품일 텐데 오늘은 참는다. 헌데 이 집 백김치의 깔끔하고 상큼한 맛이 그 중 백미인 것 같다. 이 백김치로 막국수를 돌돌말아 한 입 가득 집어 넣어보라 문화재 탐방여행을 하는 맛.멋.흥의 감흥을 이런데 서도 알게 될 것이다.


동창위 대항과 정화옹주 묘역

정화옹주[貞和翁主, 선조 37년(1604)~현종 8년(1667)], 선조의 딸로 온빈(溫嬪)한씨 소생이다. 한씨는 지중추부사 한계순(韓繼純)의 6대손이다.

부왕 선조가 붕어(崩御)할 때 겨우 4살이었기 때문에 인조 8년(1630)에 가서 동지중추부사 권익중(權益中)의 아들 동창위(東昌尉) 권대항(權大恒)에 하가하였다.

향년 64세에 졸하였는데 슬하에 자식이 없어 조카 한산군수 권덕휘(權德徽)를 후사로 삼았다.


정화옹주 권대항 묘소

 

권대항[權大恒, 광해군 2년(1610)∼현종 7년(1666)], 자는 응정(應貞), 본관은 안동(安東), 증조는 동지중추부사 권상(權常), 조부는 도승지 권희(權憘),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권익중(權益中), 어머니는 현감 조서(趙瑞)의 따님 한양조씨이다.

인조 8년(1630) 선조의 딸 정화옹주(貞和翁主)와 혼인, 관례대로 동창위(東昌尉)에 봉작되었다. 인조 34년(1636)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종한 공로로 자의대부에 승진하였고, 거듭 금군(임금을 호위하는 친위대)의 부총관이 되었다.


묘소 후면


묘역 수호를 위한 관곡재사

성품이 곧고 모든 일에 매우 신중하였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친족 가운데에서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돕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참고로 선조의 부마 길성위(정선옹주) 권대임과 영의정 권대운은 4촌(종형제)간이고 이들과 선조의 부마 동창위(정화옹주) 권대항과는 6촌(재종형제)간이다.


권대항 정화옹주묘

현종 13년(1672)에 세운 권대항 신도비는 높이 178cm, 너비 69cm, 두께 24cm의 크기로 미수 허목(許穆)이 비문을 짓고, 전하였으며, 조위명(趙威明)이 글씨를 썼다.

[번역문]

유명 조선국 자의대부 동창위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 권공 신도비명 병서

중훈대부 전(前) 행(行) 사헌부 장령 허목(許穆)이 짓고 전(篆)을 하였으며, 통훈대부 전 행 사간원 정언 조위명(趙威明)이 쓰다.

권씨(權氏)는 본래 신라의 후손이다. 시조인 태사(太師) 행(幸)은 고려를 섬겨 권씨를 사성(賜姓)받았다. 자손이 존귀하고 현달하여 영도첨의(領都僉議) 보(溥)에 이르러 그 세대가 더욱 커졌는데, 공에게 11세(世)가 된다.

공의 이름은 대항(大恒)이고 자는 응정(應貞)이다. 증조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냈고 영의정 동흥부원군(東興府院君)에 추증된 상(常)이다. 효도로써 특히 소문이 나서 지금까지 5세 100년 동안 훈도(薰陶)가 마을에 남아 있고, 집에는 효자 정문(旌門)이 있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냈고 이조 참판에 추증된 익중(益中)으로, 대대로 독실한 생활을 하여 수직(壽職)으로 귀하게 되었다.


권대항 구 신도비


만력 38년(1610, 광해군 2) 경술 10월 19일에 태어나 순효대왕(純孝大王 : 인조) 8년(1630) 정화옹주(貞和翁主 : 선조의 딸)에게 장가들어 예(例)대로 동창위(東昌尉)로 봉작되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임금을 호종(扈從)한 공로로 자의대부(資義大夫)로 승진하였다. 두 번 금병(禁兵)을 맡아 부총관(副摠管)이 되었다.

성품이 충실하고 소박하며 성실하고 신중하였으며, 검소함을 좋아하고 평소에 선행을 하였으며, 남과 더불어 서는 겸약(謙約)하고, 공손하여 존귀한 듯이 처신하지 않았다. 부모가 연로하게 되니 공도 이미 쇠약해졌으나 성실히 봉양(奉養)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매번 명절과 생신에는 친척과 손님이 모여 장수를 빌며 술잔을 올리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기쁨을 드렸다.

현종 7년 병오 정월 4일에 공이 별세하니 향년 57세이다. 임금께서 부의(賻儀)를 하사하였다. 다음 달 양주 어등관암(於登寬岩)의 언덕에 묻으니, 외조·증조의 분묘가 이곳에 있다.

옹주는 소경대왕의 딸로 온빈 한씨(溫嬪韓氏)소생이다. 한씨는 중고(中古)에 임금의 총애를 받은 재상인 계순(繼純)의 6세손이다. 옹주는 소경대왕이 승하하기 4년 전인 갑진년(선조 37년) 2월 22일에 태어나 다음 갑진년 4년 후인 정미년(현종 8) 9월 24일에 별세하니 향년 64세였다. 다음해 3월 같은 언덕에 합폄하였다.


권대항 신시도비각


자식이 없어 형의 아들 덕휘(德徽)를 후사로 삼았는데 지금 한산 군수(韓山郡守)가 되었다. 4남 4녀를 낳았는데, 아들은 처경(處經)이다. 또한 측실에서 1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덕찬(德纘)이다. 명(銘)에 이르기를,

온화하고 검약하며 행실은 바르고 매우 자애로왔구나

귀하면서도 낮추고 부유하면서도 빈한하게 지내니

선행을 쌓는 집안에는 대대로 인재가 있으리라

숭정(崇禎) 무진 후 45년(영조 8) 임자 7월 일에 세우다

                                                                                               기로회장 권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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