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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공 휘 영과 임난충의비 (종보 제443호 20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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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4-30 16:03 조회6,4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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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공 휘 영과 임난충의비
공의 휘는 영(嶸) 자는 시망(時望)이고 호는 잠재(潛齋)이며 추밀공파 24世이다. 8대조는 양촌 문충공(文忠公) 대제학 휘 근(近)이고 7대조는 문경공(文景公) 대제학 휘는 제(踶)이며 6대조는 연천(轋川)공 휘 휘로 세종 4년, 1422년 임인에 태어났다. 음보(蔭補)로 출사(出仕)하여 서울의 남부서령(南部署令)이 되고 외직으로 나가서는 연천현감을 지냈다. 공은 성품이 청렴하고 간소하며 분화(粉華)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관직에 임해서는 청신(淸愼)하고 힘써서 부지런히 수신제가(修身齌家)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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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연천군 휘의 신도비(음성군 소이면 갑산리 능안입구)

5대조 양근공(楊根公) 휘 교(僑)와 고조(高祖) 강화공(江華公) 휘 적(勣)은 지난호에 상세히 소개하였으며 증조(曾祖)는 영의정을 지낸 강정공(康定公) 철(轍), 도원수(都元帥) 율(慄)도 종보 제405호(2009.3.1)에 소개하였다.
강정공(康定公)은 선조 4년 1571년에 69세로 영의정으로 승차되었는데 공은 4조(四朝)를 섬기고 영의정을 네차례나 지내면서 세상에서 ‘덕 많은 거공(鉅公)’이라 일컬었다. 한편 공은 경상감사로 영남에 내려가 있을 때 시조 태사공의 안동 묘우(廟宇)와 능동(陵洞) 묘소 제향 등을 위해 물심으로 많은 애를 쓰기도 했다.(왕조실록•연려실기술)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홍복산 압곡(洪福山鴨谷)에 쌍분이다. 우의정 계곡(溪谷) 장유(張維)가 행장을 찬하고 동주(東洲) 이민구(李敏求)가 신도비문을 지었다. 강정공의 아들은 광흥창수(廣興倉守) 항(恒), 좌랑 개(愷), 계(悸), 증 좌찬성 순(恂), 도원수 충장공 율(慄)이 있다.

조고(祖考) 쌍천당(雙泉堂) 순(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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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쌍천당 순의 묘(위는 강정고 철의 묘)양주군 장흥면 석현리 홍복산)

조고(祖考)의 휘는 순(恂) 자는 언침(彦忱) 호는 쌍천당(雙泉堂)이고 지사공(知事公)이다. 중종31년(1577년) 42세로 처음 출사(出仕)하여 감역(監役)을 지내고 선조 18년(1585년) 조지서 별제(造紙署 別提)로서 의금부도사로 선임되었다. 그 후 군자감주부(軍姿監主簿)를 거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아우 율(慄)의 막하에 들어가 수원의 독산성(禿山城)과 행주대첩에서 혈투하였다. 이때 많은 전공을 세웠는데 선조가 이 소식을 듣고 가로되 “권율에게 이와 같은 형이 있단 말인가?” 하고는 통정대부로 올리고 양주목사(楊州牧使)로 배하였다. 선조 27년(1594년) 왕비가 해주(海州)로 갈 때 승지로 차분(差分)되어 호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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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영의정 강정공 철 존영

1595년 청송부사(靑松府使)로 임명되어 부임하기 전에 다시 평산(平山), 봉산(鳳山)군수에 배수되었는데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명나라 심유경의 접반사가 되어 서로(西路)를 세차례 왕복하고, 팽중군(彭中軍)과 이총병(李摠兵)을 수행하여 영남에 내려갔다가, 도산(島山)회전에서 이 총병이 전사하자 이를 호상하여 의주까지 갔다 왔다. 돌아와 첨지중추부사를 배수하고 1599년 단양(丹楊), 여주(驪州), 파주(坡州)등의 여러 고을 수령으로 발령 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다음해 1600년 가선대부로 오르고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에 올랐다. 공은 의표(儀表)가 위위(魏魏)하고 품성이 간엄(簡嚴)했으며 자기가 공경의 자제인 신분을 전혀 자세하지 않았다. 백성을 사랑하여 베풀기를 좋아하니 집안에는 좋은 물건이 없고 벼슬살이는 청렴하여 임소에서 돌아갈 때의 행리(行李:짐꾸러미)는 숙조(肅照)하기 그지없었다. 맑은 산수를 좋아하여 만년에는 강화의 연동(蓮洞)에 복거(卜居)하며 문달(聞達:이름이 세상에 널리 드러남)을 구하지 않고 오두(鰲頭)의 승지에 정자를 짓고 기오정(寄傲亭)이라 편액을 걸었다. 사후에 정헌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동지성균관사로 추증되고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중종 28년(1533년)나서, 1592년 임진 12월 18에 향년 60세로 졸했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석현리 선고계하에 있으며 상국(相國) 김상헌(金尙憲)이 묘지명(墓誌銘)을 지었다.
아들에는 병사(兵使) 진경(晉慶), 현령 이경(履慶), 익경(益慶), 절제사 승경(升慶), 부위(副尉) 복경(復慶)이 있다. 충장공(忠莊公) 율(慄)이 아들이 없어 익경(益慶)이 왕(王)의 승특명(承特命)으로 양자로 들어갔는데 충의공(忠毅公) 익경은 병자호란에 순절하여 충신정려(旌閭)가 내렸다. 승경(升慶)은 임란에 도원수를 도와 왜적을 파하니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고 선조 32년 무과(武科)에 장원(壯元)하였다.
진경(晋慶)은 자는 원길(元吉), 호는 농산(農山)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선조 33년 청도군수 35년 경기도 수군절도사, 광해군 즉위년 8월 13일 황해도감사 겸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고 선무원종 2등공신(宣武原從二等功臣)으로 녹훈 되었으며 광해 12년(1620년) 졸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석현리 송추(松楸)의 홍복산(洪福山)에 있었으나 충장공 율(慄) 성역화 사업으로 찬(巑)의 종가 경북 구미시 도개리 선영에 이장하였다.

잠재공 휘 영(潛齋公 諱 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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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잠재공이 강학하였다는 잠재정사

공(嶸)은 선조 35년(1602년) 5월 26일 둘째아들로 공경 대가에서 태어났으나 젊어서부터 뜻이 산림에 있고 문달(聞達)되는 것을 구하지 않더니 광해군의 난세와 병자호란 등을 겪으면서는 더욱 세상에 뜻이 없어 서울로부터 경북 선산(善山)의 별서(別墅)로 이거해 살았다. 그리고 만년에는 선산으로부터 다시 경주(慶州)의 입곡(入谷:지금의 입실)으로 옮겨 들어가 살면서 집의 문설주에 잠재(潛齋)라 편액(扁額)하니 자호(自號)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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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봉서정(입실리 잠재정사 내당)

그로부터 독서와 강학(講學)에 잠심하며 도광회채(鞱光晦彩)하다가 현종5년(1664년) 8월 16일 졸하니 수는 63세였다. 사후에 그 은일의 학행이 조정에 알려져 통정대부(通政大夫)로서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으로 추증되었다. 공은 인조가 반정을 한뒤에 누차 징소(徵召)하였으나 한번도 나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직품이 무엇이었는지 미상이다. 배위는 증 숙부인 밀양문씨(密陽文氏) 필원(必元)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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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입실리 봉서정 기문

공의 묘소는 경남 울주군 농소면 천곡(泉谷)인데 현 행정구역으로는 울산시 북구 천곡동 산37번지이다. 아들은 세득(世得)과 충의위(忠義衛) 세중(世仲)이 있고 딸은 문상훈(文尙勳)에게 출가했다. 손자는 사복시정(司僕寺正) 상기(尙機), 상평(尙平)이 있고 증손자는 우(祐), 좌승지(左承旨) 겸 경영참찬관 호(祜), 해(楷)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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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봉서정 현판

공이 이와 같이 경주에 복거(卜居)함에 따라 그로부터 수백년에 걸처 이 일대 후손이 세거(世居)하게 되었다. 지금은 서울, 부산, 대구, 울산, 경주, 영천, 포항, 안강, 입실, 연안, 내남 등 전국 곳곳에 산재하여 살고 있으며 또한 공이 살던 이곳 경주시 외동읍 입실리의 본동 봉서산(鳳棲山) 아래에는 공을 기념하는 잠재정사(潛齋精舍)가 있는데 편액(扁額)은 봉서정(鳳棲亭)이다. 이정사는 원래 경남 울주군 농소면 천곡에 있었는데 1953년 계사(癸巳)에 이곳으로 후손들이 이건한 것이다. 공의 비문은 여강(驪江) 이중구(李仲久)가 짓고 봉서정기(鳳棲亭記)는 권상규(權相圭)가 지었다. 잠재공 자손을 “경주문중”이라 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잠재공의 10세손 寧海는 入室에서 낳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6사단장, 국방부차관을 거쳐 국방부장관, 안기부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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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잠재공 영 묘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격전지인 봉서산 기슭에 2005년 공의 10세손 영진(寧珍)의 주관으로 외동임란공신 숭모회(外東壬亂功臣崇慕會)를 조직하여 지역 유림들과 힘을 합쳐 외동임란공신(外東壬亂功臣) 충의비(忠義碑)에 이등공신 崇政 순(恂), 崇政 진경(晉慶)祖를 포함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一等, 二等, 三等, 倡義義士, 44人을 올려 자손만대(子孫萬代)에 충의정신(忠義精神)을 본받도록 하였으며 선무원종공신록권(宣武原從功臣錄券)을 소장하고 있다.
세득의 묘소는 경북 경주시 외동읍 냉천리 산84번지이고 세중의 묘소는 울산광역시 범서읍 두산동 309번지 유자이다.
外東壬亂忠義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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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임난공신 충의비(경주시 외동읍 입실리)

白頭大幹이 東走 三千里한 雄脈이 東海로 入首하면서 힘찬 靈氣는 鳳凰이 깃든 鳳棲山을 이루었다. 이를 鎭山으로 한 外東坊村에는 지맥 따라 人傑이 世世代代로 부단히 義로서 紀綱을 세우도다. 壬辰倭亂은 有史以來 全國土는 焦土化 되고, 國運이 風前燈火처럼 危險하였으니, 無祿의 선비들은 倡義蜂起하여 抗倭討賊한 그 忠勳이 宣祖實錄과 功臣錄券 등 靑史에 榮譽가 永遠히 찬연하도다. 壬亂은 宣祖 25년 4월 14일 倭賊 20萬 大軍이 釜山浦로 처들어와 釜山鎭城과 東萊城이 차례로 陷落되니 官軍은 賊勢에 눌려 도망가고, 이에 慶州府城도 衆寡不適하여 無血占領당해 千年古都는 焦土化 되었다. 賊盜들의 掠奪 放火 殺人등 天人共怒할 蠻行에 慶州府尹과 判官은 흩어진 官軍을 모으는 한편 慶州士民에 抗倭討賊하자는 檄文을 傳하였다. 이에 坊土의 憂國志士들은 釜洞谷 黃龍厓와 旗朴山城에서 結陣編隊하여 決死報國할 것을 하늘에 盟誓하며 抗倭奮戰이 시작 되었다.
亂初에 蚊川會盟에서 誓死抗爭을 決意하여 兵營城奇襲戰과 永川邑城收復戰 및 東都復城戰 등을 비롯하여 屯據하고 있는 倭賊을 쫓아 各地에서 奮戰하였다. 丁酉年에 賊盜들이 다시 대거 侵入하여 再亂이 일어나니, 明의 援軍과 官軍이 島山城 攻城戰을 시작할 때 慶蔚의 義兵들은 東征軍의 先鋒에서 奮鬪하였고 最後로 島山倭城의 倭賊을 처물리칠 때까지 七年戰爭동안 唐橋會盟과 鷗江會盟 八公山城會盟 및 昌寧火旺山城會盟으로 倭種之滅을 다져가며 여러곳에서 誓死抗賊하여 세운 殊勳은 전국에서 우뚝하니 鳳捿之馘이요 鶴城之斬이며 鷄林之捷이라, 그 忠義가 靑史에 길이 빛나고 있다. 이에 거룩하신 義士들의 救國抗倭精神을 宣揚하고, 그뜻을 追慕하며, 그 英靈을 慰撫하며, 地域의 守護神으로 모시고 子孫萬代에 忠義精神을 본받아 龜鑑으로 삼고자 이 碑를 세우노라.(西紀 二千五年 五月 日 慶州大學校 總長 金一潤 謹撰 外東壬亂功臣崇慕會 謹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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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5세 세득의 묘(외동읍 냉천리 산84)

동도객관 벽상기
오호라 대저 환란(患亂)을 면하고자 함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러나 환란을 만나 당당히 당할 적에 환란은 또한 의(義)가 된다. 어찌 나만 사사로이 면할 수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성인(聖人)은 이로써 사람을 가르쳤고 군자(君子)는 육신의 계율로 삼았으니 예의(禮儀)는 이로 인하여 생겨남이다. 기강(紀綱)은 스스로 이로써 밝아지는 도다. 살아서 욕(辱)되느니 죽어서 영화(榮華)를 얻는 것만 못한 까닭에 공자(孔子)는 인(仁)을 가르쳤고 맹자(孟子)는 의(義)를 취하였도다.
사람은 반드시 삶을 버리고 죽음을 취한 연후에야 인(仁)은 이루어지고 의(義)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혹 충정훈렬(忠貞勳烈)한 사람은 모두 그 책임이 중하고 또한 그 조명(詔命)이 엄함으로 인하여 지석봉적(知石鋒鏑)의 아래에서 감히 도리키지 못하고 죽어서 공훈을 이루었도다. 이름을 떳떳이 새기고 썩지 않으니 번성하도다. 그러나 오히려 몸은 군국(軍國)의 책임을 맡지도 않았는데 미리 준비를 해서 난리가 있기 전에 병기(兵器)와 곡식을 준비하고 전쟁에 동맹(同盟)하고 한가지 꾀로서 죽음을 무릅쓰고 무리를 건져 적을 칠 대책을 알리니 오직 여러 의사(義士)들 뿐이다. 일급(一級)도 받지않고 전쟁을 당하여 오직 선인(先人)의 충렬을 생각하고 성주(聖主)의 가르침만 배우니 우국지사(憂國志士)라 다만 나라 있는 것을 알고 그 틈을 잊고 결사수천인(決死數千人)을 모아서 산하지간(山河之間)에 출몰하니 진실로 천심(天心)을 꿰뚫고 여러차례 수수(睢水)적벽(赤壁)의 승리와 같이 수공(水攻)과 화전(火戰)으로 적의 머리 수천급(數千級)을 베었도다. 하늘과 땅에 기도하며 왜선(倭船)을 깨뜨려 바다에 빠진 자 몇 백급인지 알지 못하겠도다.
봉서(鳳棲) 학성(鶴城) 계림(鷄林)의 대첩(大捷)은 비록 옛날의 명장(名將) 지사(智士)와 가히 어깨를 같이 할 수 없겠지만 동경(東京) 수백리(數百里)에 여러 의장(義將)의 신책(神策)은 돋보여 일가(一家)안에 부자(父子)형제(兄弟)숙질(叔侄)이 모두 간성지재(干城之材)라, 이것이 소위 이 아버지가 있고 이 자식이 있으며 이 아저씨가 있어 이 조카가 있음이로다. 난형난제자(難兄難弟者)가 많도다.
예부터 지금까지 비로서 경주(慶州) 울산(蔚山) 양읍의 땅에 많은 적심(赤心)을 볼 수 있으니 충성(忠誠)에 근본 뜻이 있음이로다. 어찌 또 곧고 이롭겠는가 은혜와 녹(祿)을 구하는 것이 사람의 욕심인데 한번도 조정(朝廷)에 승리한 것을 알리지 않고 제군(諸軍)에 양보하니 이것이 돌아간 것이 시(市)와 같도다. 세상에서는 공훈충정(功勳忠貞)한 사람을 구하는 것인데 어찌 꼭 고관중록(高官重祿)자만이 홀로 그 아름다움을 독점하겠는가. 이런 까닭에 객관(客官) 동헌(東軒)에 걸고 또 방곡사민(坊谷士民)에게 알리노라. 초야(草野)에 관직이 없는 이에게 권하노니 충의(忠義)있는 자를 바라노라
주: 선조 26년(1593) 경주부윤 윤인함이 이임하면서 동경관 벽에 걸었던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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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5세 세중의 묘(울산시 범서읍 두산동 309

(자료제공 : 권영진. 영달. 오상. 혁준 사진 권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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