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隱公 諱 碩物 (종보 제441호 2012.3.1) > 추밀공파 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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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隱公 諱 碩物 (종보 제441호 2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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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276회 작성일 12-04-2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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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휘는 석물(碩物) 자는 관지이고 동은(東隱)은 호이다. 8대조가 양촌 문충공 휘 근(近)이고 7대조가 문경공(文景) 휘 제(踶)이며 6대조가 안양공 휘는 반(攀)으로 문과(文科)급제하여 예조참판, 한성부윤, 개성부윤을 역임(歷任)하고 화산군(花山君)으로 봉군(封君)되었고 시호는 안양(安襄)이다. 5대조는 경력공 휘 칭(偁)으로 사품직(四品職)에 제수(除授)되었으나 취임(就任)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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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산정사(경주시 양북면 구길리)
만년(晩年)에 의금부경력(義禁府經歷)과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했다. 경력공은 후사가 없어 현감공(縣監公)의 아들 양근공(楊根公) 휘 교(僑)의 셋째 아들 목사공 휘 훈(勛)을 계자로 삼으니 고조가 된다. 목사공은 무과에 올랐고 현감이었는데 그 후 서흥부사(瑞興府使)를 거쳐, 행 통훈대부 황주진관병마동첨절제사(行通訓大夫黃州鎭管兵馬同僉節制使) 해주목사(海州牧使)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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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산정사 내당

증조(曾祖)는 수(輸)이며 연산군 8년에 출생하여 중종 29년 무과(武科)에 올라 도사(都事)로 있다가 강화유수(江華留守)를 지냈다. 조고(祖考)는 전(恮)으로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이었고 선고(先考)는 욱(昱)으로 명종 7년 식년시 진사로 합격하고 또 명종 10년 식년시 병과에 급제하여 성균관(成均館)전적(典籍)을 거쳐 예조좌랑(禮曹佐郞)을 지냈다. 청렴하고 강직했는데 권세 잡은 자에게 미움을 받아, 다시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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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은공 휘 석물 묘소(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광해군(光海君) 계축년(癸丑年 1613) 광주 둔퇴리 집에서 공을 낳았다. 공은 나면서부터 재기(才器)가 특이하고 도량(度量)이 넓었다. 서당(書堂)에 가서 글을 배웠는데 스승이 감독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였다. 성동(成童=열다섯살)이 되자 대인공(大人公)에게 「과거(科擧)에 대한 공부는 선비가 할 것이 못됩니다」하였다. 드디어 문을 닫고 학문을 깊이 연구하였다. 항상 사종형(四從兄) 수졸재공(守拙齋公)에게 가서 경서 뜻을 토론하며 참 공부에 힘을 쓰니 수졸재공이 그의 고명(高明)한 학문을 많이 칭찬하였다. 무릎을 여미고 꼿꼿하게 앉아서 문밖에 어떤 일이 있는지를 몰랐다. 이기명(二氣銘)과 이기설(理氣說)을 지어서 음양∙흑백(陰陽∙黑白)처럼 구별을 분변하였다. 삼인설(三忍說)을 지어서 자신이 행할 도(道)를 반성했으며 천군대고(天君大誥)를 지어서 몸과 마음을 수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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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은공 묘비

병자년(丙子年 1636)에 호란(胡亂)을 만나 거가(車駕)가 파천(播遷)하니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의분(義憤)이 비록 간절했으나 장수(將帥)가 아니었으니 어찌하랴. 드디어 전장(田庄)을 버리고 가솔(家率)을 거느려, 천리 넘어 월성(月城) 동쪽 동해가 구길(龜吉) 두메로 낙향하였다. 나무를 베어서 집을 짓고 땅에 불질러 따비밭을 만들어서 조석 끼니에 대한 계책을 했다. 문에다가 동은정(東隱亭)이라 쓰고 가색설(家穡說)과 세서연설(洗鋤宴說)등을 지어 조석으로 한유(閒遊)하는 즐거움으로 삼고 산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발자취가 산 밖으로 나가지 않아서 성명(姓名)을 세상에 알리지 않았으니 참으로 가둔(嘉遯 의를 지켜 뜻을 굽히지 않으려고 세상을 피해서 숨는 것)을 이룩한 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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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연정사 영모재 (양북면 용당리)

갑인년(甲寅年 1674) 오월 병으로 명을 마쳤는데 향년 62세이고 동해면(東海面) 북가동(北柯洞)장사하였는데 현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로 행정구역이 바뀌었다. 배위 경주김씨 묘소는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에 있고 배위 김해김씨는 공의 묘 좌측에 부장하였다.
행장(行狀)은 갑진(甲辰)년 월성인 이희영이 찬하고 묘지명은 진성인 이상호가 찬하고묘갈명은 사량인 최현필이 찬하였다.
동은정은 훗날 5대손이 선대의 뜻을 이어 구길리 마을 안으로 이건하였으며 무진(戊辰)년 이능윤이 상량문을 찬하였고 기사(己巳)년 손진창이 기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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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은정기(월성 손진창 기)

용연정사(龍淵精舍)는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구길리 입구 맞은편)에 있는데
일명 영모재(永慕齋)라 하여 공의 후손 중우와 태흥이 마련하니 문인제자가 서책을 안고 모여들어 세의(世誼)를 강론하며 선대의 사업을 넓혔다. 재사 이름을 영모라 함은 공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가선대부 홍문관 부제학 이조참판 이종필이 기문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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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모재 기문(이조참판 이종필 찬)

아들은 성(星)이고 손은 용학(用學), 증손은 성도(聖度)와 성욱(聖郁)이다.
공은 고인(古人) 중에 고인이었다. 지개(志介)가 강직(剛直)하고 조촐해서 조집(操執 조는 몸가짐, 집은 마음을 잡음)이 일찍 성취되었으나 불행한 때를 만나니 천리 밖으로 낙향(落鄕)해서 초목과 함께 살며 잣나비와 사슴을 벗했다.
공은 구길에 은둔하면서 많은 저술을 남기었는데 그중 이기설이 돋보여 기록한다.
이기설(理氣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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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은공의 동은정 서문

대저, 기(氣)를 궁구해 보면 그릇(器)이고 기틀(機)이며, 이(理)란 것은 기보다 신묘(神妙)한 것이다.
이는 마음속에 있는 참다움이고 기는 겉으로 나타난 자취이다. 진리(眞理)는 형이상(形而上)하는 것이고 자취는 형이하(形而下)하는 것이다. 이가 품부(稟賦)되는 바에 기가 반드시 변화하고 기가 변화하는 데에 이 또한 품부된다.
천지만물의 기가 어슷비슷해서 가지런하지 않음은 이가 그렇도록 한 것이다. 천지사이에는 두 기(二氣)뿐이다. 하늘에 있어서는 음양(陰陽)이 되고 땅에 있어서는 강유(剛柔)가 되며 사람에게 있어서는 건순(健順)이 된다. 그리고 두 기가 갈라져서 오행(五行)이 되는데 목화금수토(木火金水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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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연정과 배위묘소(용당리)

뿌리에서 가지가 나오고 열매에서 싹이 나와서 끊임없이 나오며 다함없는 것이 목(木)이다. 그러므로 목의 이가 하늘에 있어서는 원(元)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인(仁)이 된다. 환하게 빛이 있으며 번쩍이어서 범(犯)하기 어려움이 있고 지식(止息)할 수 없는 것이 화(火)이다. 그러므로 화의 이가 하늘에 있어서는 형(亨)이고 사람에 있어서는 예(禮)이다. 굳셈과 부드러움, 바름과 곧음으로서 만물을 결단하는 것이 금(金)이다. 그러므로 금의 이가 하늘에 있어서는 이(利)이고 사람에 있어서는 의(義)이다. 흘러서 움직이며 밑바닥까지 환한 것이 엉켜서 만물을 이룩하는 것이 수(水)이다. 그러므로 수의 이가 하늘에 있어서는 정(貞)이고 사람에 있어서는 지(智)이다. 설상 그 덕(德)이 있어서 만물을 발육(發育)시키며 중지함이 없는 것이 토(土)이다. 그러므로 토의 이가 하늘에 있어서는 성(誠)이고 사람에 있어서는 신(信)이 된다.
이리하여 오덕(五德)은 이이고 오행은 기이다. 이 이가 있기 때문에 이 기가 있고, 이 기가 있은즉 문득 이 이가 있다. 접때에 이른 바 이가 품부된 바에 기가 반드시 변화하고 기가 변화하는 바에 이가 품부된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공의 시문중하나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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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산정사(구길리), 용연정사(용당리) 현판

讀中庸
鳶飛時靜得 魚躍本潛來 動處方知靜 天心見地雷
중용을 읽고
날던 솔개도 가끔 고요히 있고, 뛰는 물고기는 본시 물에 헤엄친다.
움직임 있는 곳에 고요함 있고, 하늘의 마음은 땅 울림에서 본다.
<자료제공 및 감수 성균관유도회 양북지회장 권영세 편 현봉 권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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