湖堂公 諱 採와 讀書堂 (종보 제436호 2011.10.1) > 추밀공파 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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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밀공파 현조

湖堂公 諱 採와 讀書堂 (종보 제436호 20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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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4-20 21:50 조회6,0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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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당공湖堂公 채採와 자손
공(公)의 자는 여서(汝鋤)이고 호는 일재(一齋)이며 정종 1년(1399년) 출생하였다. 현조는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을 지내신 국재공(菊齋公) 휘 부(溥)이고 조부는 검교좌정승(檢校左政丞)을 지내신 정간공(靖簡公) 휘 희(僖)이며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을 지내고 제학(提學)에 오른 매헌공(梅軒公) 우(遇)의 차자이며 양촌(陽村) 문충공(文忠公)의 조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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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10년 두무포(현 성동구 옥수동)에 위치한 독서당 전경]


공은 태종 17년(1417년) 2월 12일 맹사성(孟思誠)과 변계량(卞季良)이 실시한 생원시(生員試)에서 장원(壯元)하고 같은 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하니 19세였다. 세종 2년(1420년) 22세로 집현전(集賢殿)의 부교리(副校理)가 되고 세종 6년 집현전 수찬(修撰)으로 전라도에 파견되고, 세종 7년 일본 승사(僧使) 범령(梵齡)에게 주는 시권(詩卷)에 서문을 지었다. 세종 9년 29세로 조선조에서는 최초로 실시한 문과중시(文科重試)에 또 을과(乙科) 급제하여 집현전 응교(應敎)로 보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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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충사 정읍시 옹동면 산성리]

이보다 앞선 세종 8년(1426년) 임금은 집현전에 있는 문신들에게 하교하기를 “그대들은 나이 젊고 장래가 있으니 이제부터 잠시 직임을 제(除)하고 각자 집에서 안돈하고 독서에 전심하여 그 실효를 두드러지게 이루도록 하라.” 하고 대제학 변계량(卞季良)의 지도를 받게 하였다. 이것이 호당(湖堂)이니 사가독서(賜暇讀書)의 시작이었다. 변계량의 선발로 사가독서에 든 사람은 공과 더불어 남수문(南秀文), 신석조(辛碩祖)인데 세종이 처음 실시한 이 사가독서는 관원에게 급료를 주면서 자가에서 연수를 시킨 조선조 최초의 제도이며 공이 호당에 제일 첫 번째로 들어간 것이며 안동권씨 4시(四始)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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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충사 복원 사적비]

공은 젊은 나이에 당대에 따를 자가 없는 문장가가 되었는데 세종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공은 세종 14년(1432년) 고조부 국재(菊齋) 문정공(文正公)의 <효행록(孝行錄)>에 서문을 지었고 또 공은 세종 15년 의학자(醫學者)인 유효통(兪孝通), 노중례(盧重禮), 박윤덕(朴允德)과 더불어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편찬 발간하였다. 공이 공찬한 <향약집성방>은 이른바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전신으로 고래의 우리나라 약방문(藥方文)을 집대성한 의서의 고전이다. 세종 16년 대사성으로 왕의 치덕을 기리는 사전(謝箋)을 지어 올리고 세종 17년(1435년) 당상관 통정대부(通政大夫)로서 승정원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옮겼으며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 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백부인 양촌의 응제시(應制詩)에 서문을 지었다. 세종 20년(1438년) 양촌의 <황명응제시권(皇明應制詩卷)>에 발문(跋文)을 지었으며 정몽주(鄭夢周)의 <포은시권(圃隱詩卷)>에 서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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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당공 종중 양호재 전경]

공의 역저는 <작성도(作聖圖)>이다. 이 <작성도>는 양촌의 <입학도설(入學圖說)>과 주자(朱子)의 장구(章句)를 근거로 지은 도설(圖說)이다. 공이 지은<천인심성설(天人心性說)>은 이현간(李玄澗)이 “미묘(微妙)함을 발휘하여 후학에게 혜택을 주었는데 그 연원은 다 양촌에게서 나온 것이다.”라 하였다.
이같이 현달한 공이 세종 20년(1438년) 무오에 돌연히 병졸(病卒)하니 수가 40세에 불과하였다. 부문(訃聞)을 듣자 세종이 진도(震悼)하여 치제(致祭)하였는데 그 제문(祭文)에 “발탁하여 후설(喉舌:임금에게 혀와 같은 역할을 해 주는 승지를 이름)의 직임을 맡기고 장차 크게 쓰고자 하였거늘 불행한 것이 안회(顔回:공자의 수제자)와 같이 되었도다.” 하였다. 서거정의 필원잡기에 “승지 권채가 일찍이 문장으로 세상에 떨치더니 불행히 일찍 죽었다.”고 하였다. 세종실록 졸기에 “우승지 권채(權採)가 졸하니 장성하여 시문(詩文)을 잘하고 권제(權踶)와 더불어 전형(銓衡)을 맡아 왔는데 40에 죽으니 사람들이 경악하고 탄식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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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송공등 9현을 위한 모충사 사당]

묘소는 실전되었는데 공이 졸한지 480년이 지난 1917년 전북 정읍시 옹동면 분토동(粉土洞)에 단소를 설하였으며 음 3월 16일 양호제(洋乎齊)에서 향사를 지낸다. 아들은 생원 성(晟)이고 손자는 정랑공(正郞公) 이(怡)이다.
2008년 10월25일 대전시 침산동 뿌리공원에 준공된 권문의 상징 조형물에는 사시(四始)가 음각되어 있으니 정간공과 그 자손들의 현달한 덕업이 권문을 영원토록 빛내고 있다.
독서당(讀書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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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청에서 독서당 건립을 위한 조감도]

독서당은 조선조에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세운 기구로서 호당이라고 한다. 이는 세종이 집현전 소속의 젊은 문신들에게 집에서 독서에 전념(專念)토록하는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에서 비롯되었는데 변계량이 왕명을 받아 뛰어난 문신들을 선발하여 장의사(藏義寺-은평구 진관내동) 산사를 택하여 공부하게 하였다. 그후 성종 23년 남호독서당(마포)을 열었다가 중종2년 동대문 숭인동 정업원(淨業院)에 설치되었다가 중종 10년 두모포(성동구 옥수동)에 건물을 짓고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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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청에서 계획중인 독서당 건립 예정지]

호당이란 호수가의 집으로 한강가에 독서당을 지었는데 옥수동 앞 한강이 넓어 호수같다고 하여 동호(東湖)라 하였으며 물결이 비단 같이 아름다워 금호(錦湖)라 하고 호수같은 물가에 독서당을 지으니 호당이라 하였다. 호당은 여유롭게 공부하며 동료간 선의의 경쟁을 하였으며 호당출신이 삼정승 육판서, 문형 등 높은 관직에 오른 사람이 많았다.
독서당은 인원을 한번에 6명 내외로 선발하며 당하관 이하의 문신 중 문장력이 뛰어난 자로 한정하였으며 대제학은 독서당을 거친 자 만이 가능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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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 옥수동 동호독서당 터]

오늘에 와서 36세 호당공 후손 권혁찬(權赫燦)씨가 사가독서당터를 처음으로 찾아내 그동안 관할 성동구청을 래방하여 독서당 복원사업의 타당성을 강조하여 관할 관청에서 타당성을 인식하고 학자들에게 연구시켜 복원사업을 계획 수립하여 추진중에 있으며 복원사업이 완료되면 권문의 또하나 영예로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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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공 휘 서 묘소]정읍시 옹동면 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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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공(松齋公) 휘 서(恕) 신도비

호당공의 5세손 송재공(松齋公) 휘 서(恕)는 진사로서 학행(學行)으로 참봉에 제수되고 예빈시 주부에 이르렀는데 선조조에 심통원이 삭탈관직할 때 율곡이 연좌되는 것을 임금의 아음을 돌리게 하니 조정이 그 변간지명(辨奸之明)에 감복하였다. 이후 율곡 문하에서 학문이 더욱 높아지고 퇴거하여 제생을 훈도하니 동국문생편(東國門生篇)과 유현일사(遺賢逸史에) 실려있다. 사후 호조판서겸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으로 추증되었다. 묘소는 정음시 옹동면 산성리 칠전에 있다. 분토동 동원하에 신도비를 세워웠는데 교수 이가원이 비문을 짓고 성균관장 이재서가 글을 썼다.
칠송공(柒松公) 극평(克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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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송공 재실]정읍시 칠보면 향도동


송재공의 아들로 무과급제하고효도하여 6년동안 시묘하였다. 병서에 통했는데 임난때 태인에서 의병과 곡식을 모아 진주성싸움에 분투하였으며 의주행재소에 가서 전말을 고하니 임금이 오위도총부 도사로 특제하였지만 창독으로 졸하니 태인 모충사에 배향되었다. 옹동면 산성리에는 칠송공등 9현을 위한 모충사가 있다. 묘소는 칠보면 향도동에 있다.
<현봉 권경석, 감수 권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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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송공 극평 묘소(칠보면 향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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