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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순례49] 시조묘소와 능동재사(종보 제412호 200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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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4-20 19:33 조회4,6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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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순례49] 시조묘소와 능동재사
始祖 太師公과 陵洞齋舍

태사공실기와 능동실기 묘도편이나 모재 김안국(金安國)의 모재장원기에 태사공 묘소(太師公墓所)는 천등산에서 내려와 조화곡(造火谷) 자좌오향(子坐午向)이며 옥녀단좌형(玉女端坐形)에 금차척지혈(金叉擲地穴)이라 하였으며 마을 이름은 금계(金溪)이니 속칭 검제 또는 능동(陵洞)이라고 하였다. 동국여지승람의 안동부편 총묘조에는 “김선평의 묘는 부의 서쪽 고태장리에 있고 장정길의 묘는 성곡리에, 권행의 묘는 본파곡리(本破谷里)에 있다”고 하였고, 안동읍지에는 “태사 권행의 묘는 본파곡리에 있고 장사 후 능동(陵洞)이라 하였으며” “부사 권소(權紹)가 권심행(權審行) 권몽두(權夢斗), 외손 유공계(柳公季)로 하여금 사초케 하고 한식에 제향을 올렸다.”고 하였다.


태사공의 묘소는 500여년 실전되었다가 1470년 경 추밀공파17세 평창군사(平昌郡事) 옹(雍)이 충주에서 이조정랑 배소(裵素)의 딸을 맞아 풍산현의 하회촌에 거주하면서 여지승람(與地勝覽)을 보다가 시조님 묘소를 알아내고 지사(地師)와 함께 두루 답사한 끝에 지석(誌石)을 찾음으로써 봉분을 쌓고 입석을 하려다 이루지 못하고 졸하니 임종 시 계하에 장사해 줄 것을 명하였다. 부인 배씨가 먼저 졸하여 계하에 매장하고 그 아래에 평창군을 매장하고 평창공의 아들 유(裕)와 작(綽)은 단갈(短碣)을 세우니 비문은 유의 사위 이종준(李宗準)이 지었다. 그 후 유와 작은 평창으로 돌아가고 사위인 호군 증 사복시정 유소(柳沼)가 남쪽에 매장되고 이로부터 유씨가 맏아 수호(世守)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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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재사 서후면 성곡리393번지

평창공 옹은 정간공 희(僖)의 장자 화(和)의 장남이다. 공은 목은 이색의 외척 이계린의 추천으로 한산의 지군사로 부임하였는데 역대 군수 중 명군이라 하였으며 평창군사를 끝으로 충주에 우거하였다. 평창공은 2남 2녀를 두었는데 장녀는 신숙문에게 출가하고 차녀는 풍산인 유소에게 출가하였으니 평창공이 딸을 공의 처향인 하회의 유소에게 보낸 것이다. 평창공의 아들 이후 4,5대만에 절사되니 외손 유씨가 시조 묘역을 수호하게 되었다

명종 12년(1557년) 안동부사로 부임해 온 검교공파 20세 권소(權紹)는 태사묘(太師廟)를 중수하고 태사공묘를 정수하면서 위토답을 최초로 마련하였으니 퇴계의 중수기에 상세히 나와 있다. 가첩에는 제곡 1백석을 더하고 비복도 재사에 배치하였다고 기록되었다. 권소는 능동묘제를 한식일에 지내오던 것을 한식과 10월 중정에 추향제를 올리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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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조 낭중공 단소 서후면 성곡리

선조 21년(1588년) 22세 충숙공 권극지(權克智)가 경상감사로 부임해 능동묘소를 성배하고 묘갈(墓碣)을 바꾸어 세웠다. 유성룡이 짓고 22세 권오(權晤)가 쓴 묘비문에 선조 21년 관찰사 극지가 순시 차 당도하여 제사를 올렸는데 마칠 무렵 하인이 잘못 비석을 건드려 깨지니 다시 세웠다고 한다. 영조 22년(1746년) 경상감사 시중공파 28세 권혁(權爀)이 다시 세웠다.

현종 2년(1661년) 24세 탄옹 권시(權諰)가 지은 태사공 신도비문에는 21세 영의정 권철(權轍)이 관찰사가 되어 위토를 마련하였다 하였으며 명종 21년(1566년) 서애 유성룡(柳成龍) 등 유씨문중에서 정문을 올려 능동묘소를 전수(典守)해 줄 것을 청하였다.
능동실기 제영(題詠)에 22세 석주 권필(權韠)이 성묘하고 능동제영이라 시를 지었으니(석주집287쪽)

家牒稿成 題于卷尾
羅王聖骨是吾先(신라왕의 성골이 바로 우리 선조시니)
西始鳴鷄事渺然(시림에서 닭 울던 일 그 자취 아득하다)
錫邑今方三七代(식읍 하사 받은 것이 바야흐로 21대)
開邦舊已一千年(나라 연 지 아득히 1천년이 지났다네)
翰林詞藻風聲遠(한림의 문장은 풍성이 아득하고)
僉議尊榮福慶綿(첨의 존영은 복과 경사 이어졌네)
小子怛然憂失墜(소자는 실추할까 두렵고 근심하여)
錄爲家牒要流傳(가첩으로 기록하여 오래 전하려 하네)
* 태사께서 내게 21대조이니 삼칠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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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루 : 2층 누각에서 각종행사와 제향 분정을 한다.

효종 4년(1653년) 경상감사 24세 동곡(東谷) 권우(權堣-추밀공파 정헌공계 충숙공 절(節)의 6대손)가 묘소 우측에 공터를 마련하여 재사(齋舍)를 창건하니 대청 4간에 협실 각 2간과 협실 아래 동서재 각 3간, 정면 4간에 곳간 등 4각형으로 16간으로서 비로소 태사공 묘소를 전수하는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1687년 24세 하당 권두인(權斗寅)이 재사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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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재사 내당 우측 수임실, 중앙 마루, 좌측 당회를 여는 방

효종 10년(1659년) 영천군수 25세 호연(浩然) 권성원(權聖遠-시중공파 화천군(花川君)5대손)이 태사공 신도비 수갈을 발의하여 석역소를 설하고 풍기에서 7척의 돌을 벌채하여 외손 이인(李土寅)이 도왔으나 호연공이 한성서윤으로 부임해 중단되었다가 현종 4년 호연이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재착수하였는데 하세하니 24세 권정(鋌)과 심(淰) 입석하였다.

신도비문은 현종 2년 한성우윤 탄옹 권시(權諰)가 짓고 글씨는 외손 이조참의 이경휘(李慶徽)가 썼으며 두전(頭篆)은 외손인 사헌부 장령 허목(許穆)이 썼으며 음기는 외손 예조참판 조복양(趙復陽)이 짓고 병조판서 외손 김좌명(金佐明)이 썼다. 숙종 3년(1677년) 12월 능동재사에 각파 대표가 참석하여 종약을 제정하고 족회(族會)를 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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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 구 신도비 우 : 신신도비

숙종 8년(1682년) 경상감사 시경(是經)이 상석을 개조하고 향로석, 문관석, 망주석 등을 세웠으며 재사가 협소하므로 누각을 세우기로 하여 1684년에 7간의 누각을 준공하니 위층에 1백인이 앉을 수 있고 아래층에 좌우 곳간을, 중앙에 통로를 만들고 재사 동쪽에 3간 신주(神廚)를 세우고 담장을 두르니 곧 추원루(追遠樓)이다. 능동실기 신도비각 중수기에 안동부사로 재임 중인 26세 유회당 권이진(權以鎭)이 신도비각을 세우고 영조 1년(1725년) 경상감사로 와 족회를 베풀었다

숙종 40년(1714년) 유성연이란 사람이 시조 묘소 용미(龍尾)에서 큰 나무를 베니 권문과 유씨간에 오랜 송사를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 안동부는 “태사공 묘도의 국내는 권문에서 주관해야 마땅하며 유문 선영이 태사공 묘소 앞에 있으나 이는 외손으로 부장되어 있으므로 태사공의 묘산은 권문과 힘을 합쳐 수호하여 초목도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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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신도비각 : 서후면 374번지

영조 18년(1742년) 유문에서 능동재사의 수묘군(守墓軍) 승도(僧徒)를 모두 내쫓고 점거하는 사변이 일어났는데 안동부에서 해결이 안되니 권이성을 대표하여 한성부에 정문을 냈다. 비변사에서는 제사를 내려 “태사의 묘도를 수호하는 절목은 타인이라도 공경하고 삼가는 여지가 없거늘 추로지향(鄒魯之鄕)을 돌보지 않아 이 같은 행위가 자행된다니 실로 지극히 한심하다. 방자한 짓이라 규정하고 법으로 다스리라” 하였다.

영조 29년(1753년) 능동재사에 원인 모를 화재가 나 건물이 전부 소실되었다. 

정조 20년(1796년) 언덕에 보판각을 건립하였는데 이는 후 갑인보 목판을 보존키 위해 세운 것이고 순조 26년(1826년) 중건하고 고종 33년(1896년) 이건하였다. 

헌종 4년(1838년) 이재 권돈인(權敦仁-시중공파 32세)이 경상감사로 부임하여 능동재사에 화수회(花樹會)를 열고 위토를 더하도록 하였으며 헌종 5년 예천군수 권용만(權用萬)이 위토를 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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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공 구신도비 성곡리 395번지

고종 27년(1890년) 재사 동쪽 전사청(典祀廳)의 하례방을 보수하였는데 권연호(權淵浩)의 재사중수기에는 병신(1896년) 4월 8일 밤 숙직자가 실화하여 불길이 치솟고 70여간이 모두 소진되어 현액(懸額)과 신필(信筆)이 모두 타 버리고 오직 장판각(藏板閣)만이 모면하였다 하였다. 이후 전사청을 중신(重新)하고 유사가 재숙할 성경재(誠敬齋)를 지었으며 이해 가을 중건할 것을 모의하여 여러 회의기구에 배당해 자금을 모아 이듬해 본채 21간을 세우니 당(堂) 4간 서재 4간 당 북쪽에 사경재(思敬齋) 2간, 남쪽에 주사(주방) 5간 동익에 제기보관소 서익에 곡식저장소를 지었으며 1899년 2월 안동에서 의연금으로 추원루를 복원하니 위층은 당헌(堂軒), 아래층은 곳간을 세우니 총 28간이라 하였다. 귀산 권제녕(權濟寧)이 지은 재사중수기실에는 병신년 4월 불이 누각에서 번져 실당으로 만연하여 70여간이 회신되고 임사청(任事廳)과 전사청만 남았으니 계유년(1753년) 재앙보다 더 혹독하였으며 1897년 4월부터 중건이 시작되어 3년만인 광무 3년(1899년) 완공되었다 하며 추원루에 8개 주련을 붙였는데 충장공 권율도원수 10대손인 경농 권중현(權重顯)이 지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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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판각 : 후갑인보를 보관했던 곳

광무 5년(1901년) 능동 동구 가까이 신신도비(新神道碑)를 수갈했는데 고유문은 권연호(權淵浩)가 지었다. 신도비 재건소지에 1661년 4주갑(周甲)이 되니 비신 전후가 갈라지고 글자가 마멸되어 새로 세워야겠다고 1890년 의논 하였는데 병신년(1896년) 화재가 나 네 번의 한서(寒暑)가 지나 9월에 준공하였다고 한다.신도비 상량문은 33세 권상한(權相翰)이 지었으며 신도비 터는 풍산 유씨 제전이므로 다른 위토와 상환하였다 한다.
광무 7년(1903년) 안동권씨경중대종중보소(安東權氏京中大宗中譜所)를 설치하고 서울과 안동으로 나누어 족보수단을 받아 대종중은 최초로 항렬자(行列字)를 제정 공포하였는데 3월 3일 대종중 명의로 전국에 통문을 보냈으며 31세부터 60세까지 세차배정항렬록을 발송하여 현재 사용하고 있다.

추밀공파 32세 죽농 권중석(權重奭)은 한성판윤, 의정부참찬, 군무총장을 지내고 육군무관학교 교장을 지냈는데 퇴임하면서 1907년 정미보를 발행하였으며 경농 권중현(權重顯)은 참찬과 대신을 지냈는데 융희 3년(1909년) 태사공실기(太師公實記)를 발간하였다. 권중석이 주관하여 발간한 이 실기는 안동 태사묘(太師廟)와 능동재사(陵洞齋舍) 운곡서원(雲谷書院)을 집대성한 권문의 큰 보감이다. 1969년 봉우 권태훈(權泰勳)은 능동실기를 국역하여 「초역능동실기(抄譯陵洞實記)」를 발간하였다.



평찬군사 옹의 묘소 : 태사공묘 계하

1972년 재일(在日) 후손들이 모국을 방문하여 구신도비 비각을 중건하고 둘레 담장을 쌓았다.

이해 11월 능동 종약소(宗約所)를 안동권씨대종회(安東權氏大宗會)로 개칭하고 규약을 개정하였으며 대종회에 관리위원회를 두었다.

1980년 능동재사의 진입로를 확포장하고 주차장을 마련하였으며 1981년 평창공 배부인 묘를 평창군 묘에 합폄함으로써 태사공묘소 춘추향사에 제전을 넓혔다. 1984년 1월 10일 능동재사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 183호로 지정되고 구신도비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76년 대종회관리위원회를 종무위원회로 개칭하였으며 1987년 추밀공파 36세 중앙화수회장 권달안(權達顔)의 주선으로 신신도비각을 중수하였으며 1990년 12월 능동(陵洞) 봉암(鳳巖) 양소 재사중수위원회를 구성하여 1998년 2월 능동재사가 100년 동안 낡아 중수를 하였다.  <賢奉 權景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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